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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12.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45

의사들은 도대체 왜 그러나?-2

1. 의사들은 왜 그리 겁을 주나?

수술 전 환자분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회진을 돌다 보면 대부분 이렇게 물어보시죠.

"선생님, 수술은 위험하지 않은 거죠?"

"아, 네, 조금 위험한 수술이긴 합니다만 최선을 다해서 해드리겠습니다."

"수술하실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저희는 선생님만 믿고 왔는데....."

"사람이 사람을 수술하는 데에 100%라는 것은 없거든요. 하지만 잘못될 확률은 매우 낮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면 환자와 보호자분들은 안도하시기보다는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무조건 안심시켜줘야 하는데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제가 생각해도 그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런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다니...... 그렇다면 저는 왜 이리 못 돼 처먹었을까요?


병원에서 조금이라도 위험할 수 있는 검사, 시술, 수술을 받아보신 분들이라면 이러한 행위 전에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동의서를 쓴 적이 있으시죠? 그때를 회상해 보시면 대충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의사가 그런 의료 행위의 목적, 필요성, 방법들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고 그다음부터는 주리장창 그 행위에 관련되어 나타날 수 있는 온갖 고약한 합병증들에 대해 읊습니다. 그리고 그 합병증들의 마지막은 어김없이 혼수상태, 사망으로 마무리되지요. 그쯤 되면 듣는 환자와 보호자는 사지가 벌벌 떨립니다. 아니, 도대체 이걸 받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왜 의사들은 이렇게 환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미지 출처: 파이낸셜 뉴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나 위해를 줄 수 있는(이를 침습적이라고 표현합니다.) 행위를 할 때에는 환자의 승낙을 얻어야 합니다. 그냥 승낙해 달라고만 해서는 안되지요. 환자의 현재 상태, 하고자 하는 행위(검사, 시술, 수술)의 내용 및 방법, 그것과 연관되어 발생 가능한 위험성, 그리고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남기기 위해 동의서를 작성하고 설명한 의사와 설명을 들은 환자 혹은 보호자의 서명을 받아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사의 의무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필수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와 보호자분들은 싫든 좋든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료 행위의 필요성,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은 빨리 끝납니다. 보통 환자분들이 이해하시기 쉽도록 동영상이나 인체 모델 등을 사용해서 하고 그 원리가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들은 너무나도 종류가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따라서 환자분들은 

"아니, 이 의사는 왜 겁주는 이야기만 하고 그래?"

하는 기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나도 잘 알아요, 시술이나 수술하다가 부작용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그 확률이 낮으니까 나는 그냥 안심하고 받을래요. 순순히 받겠다는데, 그런 불안한 이야기들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도대체가 안심을 하려고 해도 그런 말을 들으면 더 겁이 나고 기분이 언짢아지잖아요, 네?"

네, 이해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설명드리는 것이 의료진, 특히 의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관련 뉴스를 찾아보다 보니 오늘만 해도 이런 판결이 나왔더군요.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765


그렇다면 이러한 설명의 의무를 왜 굳이 만들어 놓았을까요? 환자분들은 어떤 시술이나 수술을 받을 경우 항상 그 결과가 최선일 때만을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을, 하느님의 손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고쳐드릴 때에는 '완벽'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확률의 차이는 있지만 의사가 실수할 수도 있고, 혹은 실수 없이 잘해드렸는데도 결과가 예상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환자분들은 의료 행위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상황들이 두려울 경우 그 행위를 받는 것을 거부하거나 다른 대안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환자분들의 몸은 환자분들의 것이니까요. 이러한 환자분들의 자율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위해 의료진이 의료 행위 전에 그렇게 상세한 설명을 드리고, 특히 합병증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그러면 이렇게 물으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이제 알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그 무서운 합병증들을 모두 말할 필요가 있어요? 중요한 것 몇 가지만 말해 주면 되잖아요. 꼬치꼬치 따져가면서 수십 분 동안 겁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요? 그러면 그걸 받고 싶다가도 정이 다 떨어져요."

또 한 번 말씀드려야겠네요. 그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의료진이 설명드리지 않은 상황이 벌어져 환자분이 문제를 삼을 경우 의사는 설명 의무 위반으로 책임을 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적인 책임입니다. 비단 법적인 책임이 아니더라도 원하지 않던 합병증이 발생하면 환자분들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 걸 자세히 설명해 주셨어야죠. 미리 알았으면 안 받았을 거 아니에요. 이건 모두 병원의 책임이에요."

이런 말은 저도 숱하게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 전에도 온갖 합병증을 '마치 생기기라도 바라는 것처럼'(환자분의 말에 따르면) 꼬치꼬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네, 그것도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집도하는 선생님이라도 안심을 시켜주어야죠. 안심은커녕 앞장서서 겁을 주면 어떡해요? 저희는 선생님만 믿고 온 거잖아요."

이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환자분들을 안정시켜드리기 위해 "다 잘 될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간단한 수술이니까요.", "안전하게 잘해드릴게요."라고 말씀드렸다 칩시다. 만약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빚어지면 환자분들은 의료진에게 이렇게 따지시거든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간단하고 안전하다고....... 그래서 믿고 받은 건데 이게 뭐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받았을 텐데...... 결국 선생님이 우리를 속인 거예요."

어쩔 때는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따지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이 의사의 입장입니다. 의사도 환자분들을 안심시켜드리고 싶지만 현실이 너무 엄혹합니다. 열심히 잘해드리고도 험한 꼴을 당할 수 있거든요. 저도 수술하는 의사라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진료실의 의사에 대한 폭언과 폭행은 남의 얘기가 아니거든요. 사실 저도 오래전 이기는 하지만 몇 번 당해 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JO5g4222Ss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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