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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13.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46

의사들은 도대체 왜 그러나?-3

2. 왜 수술 시간은 의사들이 말한 것보다 오래 걸리는가?

"선생님, 수술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수술받으실 분들이 꼭 물어보시는 질문입니다. 당연히 궁금하시겠지요. 이에 대해서 외과 의사들은 수술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대답해 드리게 되는데 여기에서 의사와 환자분들 간의 입장차가 생기는 것입니다.


의사들이 흔히 말하는 수술 시간은 피부에 절개를 가할 때부터 수술을 마치고 다시 피부를 봉합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피부 절개에서 피부 봉합까지 걸리는 시간이라고 해서 영어로는 'skin to skin"이라고 합니다. 어떤 집도의는 피부 봉합하는 시간을 빼고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봉합은 주로 전임의나 전공의 선생이 하게 되니까 자신이 직접 수술에 참여하는 시간만을 계산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수술 시간을 더 짧게 말씀드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간 계산이 참으로 이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동료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항상 느끼는 것입니다. 외과 의사들은 같은 수술을 빨리 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동일한 수술을 짧은 시간에 마칠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외과 의사의 손이 더 빠르고 실력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자신의 수술 시간을 매우 짧게 계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은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같은 내용의 수술 중 가장 짧게 걸린 시간을 기준으로 그것이 평균 수술 시간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뭐, 이런 일은 여러분들도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경험하는 착각이지요. 가령, 출근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할 때 차도 안 막히고, 기막히게 환승 시간도 딱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평균 소요 시간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경우들 말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아침에 기상하고, 여유 있게 식사도 하고 집을 나서면 그날따라 이상하게 차도 안 오고 길도 막혀서 지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여튼 외과 의사들의 이런 자기중심적인 시간 측정은 동료들 간의 대화 중 비교 우위를 느껴 안도감을 갖는 데 사용됩니다.

"벽돌 선생은 A 수술하는데 얼마나 걸려?"

"아, 저는 약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김 선생님은요?"

"그래? 난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1시간 20분이면 끝나던데. 벽돌 선생이 수술을 꼼꼼하게 하나 보지?"

"아, 네, 뭐 그런 것도 아닌데요......"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은연중에 김 선생님은 벽돌 선생에 비해 자신의 수술 실력이 훨씬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이든 아니든 그렇게 자위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외과 의사들은 자신의 수술 시간을 아주 빡빡하게 계산합니다. 우수리 떼고, 반내림도 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뇌리에 박혀 환자분들에게 그 시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느끼는 수술 시간은 어떤 것일까요? 제가 여러분들께 여쭤본 결과로는 그들이 느끼는 수술 시간은 수술실에 입실했다는 휴대폰 메시지를 받은 후부터 퇴실했다는 메시지를 받는 순간까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실 것입니다.

"수술방에 들어가서 나오기까지가 결국 수술 시간 아닌가요? 그 시간에 수술이 이루어지잖아요."

네, 그런 것 같지만 이것은 같은 듯 다른 것입니다. 수술실 안에서는 수술 말고도 다른 일이 많이 벌어지거든요.


우선, 수술실에 입실하면 환자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절차를 밟습니다. 그다음 환자를 이동용 침대차에서 수술 테이블로 옮기게 되고요. 그리고 수술 전 가장 중요한 처치인 마취를 유도하게 됩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induction이라고 합니다. 마취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요? 전신 마취냐, 부분 마취냐에 따라, 또한 부분 마취라면 그 종류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이 매우 차이 납니다. 빠르면 15분 정도에서 오래 걸리면 1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마취를 걸고 나면 환자를 수술에 필요한 자세로 위치시켜야 합니다. 수술 테이블 위에 똑바로 누운 자세로 위치시키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지만, 엎드리게 한다든지, 아니면 특수한 자세를 취하도록 한다든지 해야 한다면 이것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쉽게 20-30분이 갑니다. 환자를 원하는 자세로 위치시킨다고 바로 수술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수술부를 소독하고 그 부위만 노출시킬 수 있도록 수술포로 환자의 몸을 덮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래저래 하다 보면 이 과정에도 약 1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자, 이 정도 준비를 해야만 외과 의사가 알려준 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수술이 끝났다면 어떨까요? 바로 수술실을 나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제 환자를 마취로부터 깨워야 하겠지요? 이 과정도 수십 분 걸립니다. 따져 보시면 수술실 안에서 수술 이외의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 즉 수술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경우에는 수술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립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외과 의사가 말한 수술 시간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수술 시간은 항상 1-2시간 더 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술 중에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미리 환자분들께 이러한 점을 말씀드립니다. 괜히 불안해하거나 오해하시지 않도록 말이지요. 거기다가 저는 원래 수술 시간 계산도 매우 보수적으로 합니다. 별문제 없이 되더라고 오래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말이지요. 왜 그러냐고요? 그냥 저의 습관입니다.


수술 시간 계산에 대한 제 생각을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외과 의사들은 수술을 빨리 하는 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외과 수술 역사의 초창기에 주종을 이루었던 절단 수술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발사가 수술을 하던 그 시기 말입니다. (링크해 드린 글을 참조해 보십시오.)


https://brunch.co.kr/@osdlee/173

 그 당시에는 제대로 된 마취 의학도 태동하기 전이었고 지혈 기술도 발달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몇 개 안 되는 정해진 수술을 누가 더 빨리 하는가가 그 이발사의 실력을 가늠하는 지표였습니다. 순식간에 수술을 마친다면 환자가 고통스러워할 시간을 줄이고 출혈도 최소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 당시 다리 절단술은 5분 이내로 끝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떨까요? 마취 기술도, 다른 수술 기법도 눈부시게 발전하였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지연시킬 필요는 없으나 가급적 수술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수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성급하게 수술을 마치고 재수술의 위험성으로 마음 졸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수술 후 봉합에도 매우 신경을 씁니다. 수술 후 환자분의 기능과 미용에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술 시간이 남들보다 좀 더 걸리게 되는데 저는 그것이 제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그것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수술을 빠르게 할 줄 몰라서 드리는 변명은 아닙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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