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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11.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4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의사(doctor)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요, 내과계 의사(physician)와 외과계 의사(surgeon)가 그것입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수술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수술장에 환자분을 모시고 들어가 본격적으로 마취하고 절개를 가한 다음 수술적 조작을 하는 의사들이 외과계 의사이고, 주로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을 돌봐드리거나, 하더라도 가벼운 마취를 하고 시술을 통해 치료해 드리는 의사들이 내과계 의사입니다. 외과계를 구분하는 방법은 쉽습니다. 일단 과의 이름에 '외과'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일반) 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은 확실히 외과계입니다. '외과'라는 명칭이 들어가지 않지만 수술적 치료를 병행하는 산부인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등도 외과계에 속합니다. 경험하셨거나 기억하시기에 누군가 그 의사에게서 마취하고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생각되시면 그 사람은 외과계 의사입니다. 그렇지 않은 의사들은 내과계 의사이겠지요. 내과계에는 내과, 소아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피부과 등이 포함됩니다. 내과계 의사들은 원래 진료실에서 약 처방이나, 주사, 간단한 시술들로 치료를 해드리는 게 전통이었는데 최근 들어 그 영역을 확장해서 보다 위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시술들을 행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소화기 내과 의사가 위장관 내시경을 통해 검사하고 치료를 한다든지, 심장 내과 의사가 심혈관 조영술을 통해 다양한 심장 질환을 치료한다든지 말이지요. 


그런데 이 두 가지 종류의 의사들 명칭이 영어로는 영 다른 것이 조금 신기하지요? physician과 surgeon이라니 공통점이 전혀 없잖아요. 그것은 그들의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원래 physician이라는 말은 없었고 의사는 모두 내과계 의사를 뜻하는 doctor였습니다. 의사(doctor)라고 하면 무릇 고상하게(?) 눈이나 귀, 손을 통해서 환자의 상태를 진찰하고 약이나 주사를 통해 치료해드리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무식하게(?) 칼을 들고 병을 치료하겠다고 설치다니 끔찍한 일이었겠지요. 따라서 칼이나 그 밖의 도구로 신체에 상처를 가하고 물리적인 조작을 하는 surgeon은 엄밀히 말해서 doctor와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원래 surgery(수술)이라는 말도 라틴어 chiruriae(손으로 하는 일)가 그 어원입니다. 예로부터 머리로 하는 일보다는 손으로 하는 일이 천시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세 시대를 거쳐 18세기 중반까지 이발사(barber)가 surgeon의 역할을 했습니다. 어차피 마취 기술이 발전하기 전이라서 수술이래 봤자 팔다리의 절단 수술이 주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칼이나 가위를 잘 쓰는 사람들이니 그것을 이용해 상처 나고 썩어가는 팔다리를 절단하는 일에 능숙했겠지요. 



전 세계 어디를 가시든지 위와 같은 표시등을 보시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아시겠지요? 네, 바로 이발소를 표시하는 등입니다. 빨강, 파랑, 하양 띠 모양이 섞인 저 표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바로 빨간 동맥, 파란 정맥, 하얀 붕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발사가 외과 의사를 겸업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지요. 중세 시대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는 가게마다 상징적인 문장이나 간판을 사용해서 그 상점이 다루는 물건을 표시하였습니다. 이발소도 간판을 걸어야 할 텐데 어떤 것을 내걸어야 좋을까요? 제 생각에는 가위를 거는 것이 가장 좋아 보이는데 이것은 재단사와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이발사들은  '나는 머리, 수염을 깎지만 간단한 수술도 한다.'는 자부심을 드러내려고 했는지 저런 간판을 생각해내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지요?

 

각 상점의 특징을 형상으로 잘 나타내는 간판들이 남아있는 곳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가 유명합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들르셔서 재미있는 간판들을 감상해보세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의사의 진료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가 외래로 오시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병실에 입원하신 환자분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각자가 전문으로 하는 수술이나 시술, 검사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외과계 의사들이라면 주로 수술장에 들어가 수술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의 업무 시간 구분은 보통 한 나절(하루 낮의 반)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어원이 어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저희들끼리는 보통 '한 타임'이라는 콩글리쉬로 부르는데요, 쉽게 말해서 하루의 오전, 오후를 구분하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루의 일과가 오전, 오후로 나뉘니까 하루에 두 타임, 일주일이면 10타임이 있겠지요. 물론 어떤 병원은 토, 일요일에도 진료를 하기도 하니까 10 타임 이상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10 타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병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저희 병원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보통 내과계 의사들은 일주일에 3-6 타임의 외래를 봅니다. 외과계 의사는 2-4 타임의 외래를 보고 나머지 시간에 3-6 타임의 수술을 합니다. 그러면 남는 시간이 있지요? 그 시간에는 연구나 교육 업무를 하거나 각자 필요한 다른 일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대학이나 병원의 경영, 행정 업무를 당당하기도 합니다.


저는 한 주일에 3 타임의 외래 진료, 4-5 타임의 수술을 합니다. 그러면 2-3 타임의 시간이 남는데요. 그 시간에 주로 연구를 하고 여러 가지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정말 이건 비밀이지만 가끔은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기도 하고 브런치 글을 쓰기도 하지만요. 

(계속)



* 이런, 제 못된 버릇이 또 시작되었네요. 글 쓰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논문도 아니니까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도 덧붙이면서 자유롭게 써보려고 합니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알려주세요. 다시 방향을 잡아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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