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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12.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5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그럼 우선 외래 진료부터 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외래 진료는 여러분들이 병원 와서 보시는 진료 그대로입니다. 다만 이제는 여러분이 환자가 아니라 의사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소한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부담을 가져옵니다. 저는 한 타임 진료에 약 50-60분의 환자들을 봐드립니다. 그중에 15-20분은 제가 처음 만나게 되는 신환입니다. 제 외래가 일주일에 3 타임이라고 했지요? 따라서 매주 약 150-180 분의 환자를, 그리고 그중에서 약 45-60 분의 새로운 환자들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지고 오시는 데에다가 성격이 제각각이시기 때문에 모든 분들의 기분을 맞춰 드리는 것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어디에서든 환자분들을 봐드릴 때에는 항상 그러하지만 특히 외래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정확하게 진단하고 올바른 치료 방법을 선택하면서, 그것을 환자와 보호자분들께 이해시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외래 진료를 볼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제 초상권 보호를 위해서 외국 사진을 빌려왔어요.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는데요. 우선 저는 이렇게 잘생긴 의사가 아니고, 또한 이런 미인이 제 환자로 오는 경우도 별로 없어요.


제가 자신하건대 청년 의사이던 시절 저는 누구보다도 환자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의사였습니다. 저를 찾아와 주신 분들이 고마워서 한 마디라도 더 나누려고 하고, 비싼 검사도 되도록 피하여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려 하였지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친절한 의사로 뽑혀 병원에서 표창을 받았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제 외래에서는 환자와 보호자분들의 고함이 끊이지 않았으며, 심심치 않게 가운을 입은 채로 멱살을 잡히기도 했습니다. 청와대에 저를 벌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다행히 대통령님이 상황을 이해하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조국(祖國)에 충성하기로 맹세하였습니다.)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들으시면 깜짝 놀랄 험한 일도 당했지만 제 아내가 그 말만은 평생 하지 말라고 해서 이 정도에서 참겠습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언뜻 생각하시기에도 참 이상하지요? 저같이 양심적인 의사가 왜 그런 수모를 당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저는 몇 년간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친절하다고 소문난 선배 의사들의 외래를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모른다면 그들이 환자분들을 대하는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기라도 해 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친절한 의사들을 관찰한 결과 저에게는 없는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아, 이것은 친절한 의사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항상 웃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 시선을 잘 맞춘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으로 대화한다.

- 가족처럼 친밀하다. 어르신 분들이 오시면 마치 자식처럼 대한다. 심지어 가끔 반말도 섞는다.

- 몸이 쉬지를 않는다. 큰 동작으로 바디 랭귀지를 섞는다. 환자분들과의 대화 중 과장된 리액션을 보인다.

- 불필요한 검사를 원하는 분들은 받게 한다. 반대로 검사나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분들은 더 이상 설득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환자분들의 뜻에 맡긴다.


이제 암울한 의사 생활도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발견한 차이점들을 몸에 익히려 혼자서 쉐도우 트레이닝(shadow training)까지 하였습니다. 자신감이 붙을 때쯤이 되자 저는 하루빨리 외래에서 제 환자분들을 만나 뵙고 싶어 잠을 설칠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선배들의 교육으로 다시 태어난 제가 외래에 투입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그 이후에 제 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가 되었을까요? 환자분들이 감동적인 의술을 실천하는 저를 위해 송덕비라도 세워야 한다고 구청에 민원을 넣었을까요? 저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친절한 의사로 선정되어 병원장님의 표창장을 받게 되었을까요?

(계속)


* 아무래도 또 삼천포로 빠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심하면 말려주세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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