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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Jul 18. 2022

인간은 왜 이따위로 생긴 것일까?-2

1. 인간은 정말 아름다운가?

인간의 괴상한 모습에 대한 조롱은 이만하고 다음으로 원초적인 궁금증에 다가가 보자. 그렇다면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인간의 생김새는 무엇으로부터 유래한 것인가?


우리의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해 줄 명쾌한 답변이 책 한 권에 실려있다. 기독교의 성경이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통해 현대 사회의 모습을 일군 사상의 기초이며 아직까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교세를 누리고 있는 종교의 시발점이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봉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을 장식하는 것은 하느님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는 창세기이다. 이 창세기의 1장 26절부터 31절까지를 잠시 살펴보자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아담의 창조


즉,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느님도 우리와 똑같은 요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위 그림은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에 관하여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이 그림이 누구에 의해 그려졌고,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그림을 생전 처음 본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 천장화 중 '아담의 탄생'이라는 작품이다. 하느님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흙으로 빚은 아담의 몸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장면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에 매달려 태어나지 않았던 아담이 어찌하여 몸통의 중앙에 배꼽을 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느님도 탯줄의 흔적이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신성불가침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까 봐 저렇듯 얇은 천옷으로 몸을 휘감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다. 아니,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발칙한 반발심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혹은 작가의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다. 


이제 이야기의 본질로 되돌아 가보자. 뭉툭한 몸통, 가는 팔, 다리, 그리고 여러 개의 구멍이 뚫린 동그란 머리통을 달고 있는 인간의 형태는 영광스럽게도 바로 하느님의 그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태어난 자신의 분신이 자랑스러워 스스로 만들어낸 짐승과, 새, 씨앗과 나무를 다스릴 권리까지도 흔쾌히 허락하였다. 무엇보다도 재미난 것은 인간 세상을 만들어낸 엿새째 날을 마무리하면서  '손수 만드신 것이 참 좋았다.'라고 최고 점수의 합격점을 주었다는 것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자신과 꼭 닮은 생명체를, 손수 만드신 거대한 우주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와 꼭 닮은 자식을 낳고 기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호들갑을 떨기 일쑤이다. 자식에게는 터럭 하나 신세 진 것도 없이 항상 갚아야 할 큰 빚이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제 생명까지 아낌없이 바쳐가며 그들의 호의호식을 이뤄주려 한다. 그러니 하느님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인간의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으나 만약 그것이 하느님의 성스러운 얼굴과 몸을 본받은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생각을 바꾸어야겠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하느님의 모습은 가장 완벽한 것이며 그것을 모방한 인간의 모습도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만약 그것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런 내가 언제라도 벼락을 맞아도 쌀만큼 불경하거나 심미안이 왜곡된 변종일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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