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짜리 소설]
도와줘요, 하이드 양(孃)-8

오늘만은 얌전하게

by 파란 벽돌

그렇게 3년이 지나고 어느덧 4학년이 되었어요. 이제 그 녀석을 불러내는데 최고 용량 캡슐이 2알씩 필요했어요. 나와 있는 시간도 점점 짧아졌고요. 그러던 어느 날 지도 교수님과의 회식이 잡혔어요. 이제 졸업반이 된 저희에게 지도 교수님은 절대적인 분이었죠. 특히 학교에 남아 교직을 걷고 싶어 하는 나같은 친구들에게는 교수님 말씀 한마디가 성경책의 예수님 말씀 한마디와 똑같은 무게였어요. 취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추천서 하나가 취직 시험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지요. 더군다나 우리 교수님은 업계에서 발이 넓은 분이에요. 소위 ‘약밥’을 먹고 살려면 교수님 말을 잘 들어야 해요.


회식 때, 교수님 옆자리에는 항상 여학생이 앉는다고 했어요. 선배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불문율이었어요.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이왕이면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지 않겠어요. 그 정도는 나도 이해해요. 그런데 오늘은 그 자리에 내가 앉게 되었어요. 술자리 분위기 끌어올리는 데에 미스 하이드만한 인물이 없다는 친구들의 추천 때문이었지요. 지금까지 교수님과 만나는 자리에는 지도희가 있었어요. 교수님 앞에서 감정과 본능을 앞세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죠. 수수하고 부끄럼 많이 타는 조신한 지도희로도 충분했거든요.


여러가지 일로 바쁘셔서 약간 늦게 도착하신 교수님은 기분이 매우 좋아보이셨어요. 꿈과 열정이 충만한 젊은이들을 보고 누군들 기분이 들뜨지 않겠어요.

“자,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나를 교수님이 아니라 5학년 선배라고 생각하고 자유롭게 대화하길 바래요. 어차피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학교, 학과를 나온 데다가 졸업한 지도 엊그제 같기 때문이지. 형, 오빠라 불러도 오늘은 상관 안 할게. 알았지?”

“네, 형님!” 장난꾸러기 남학생이 추임새를 넣었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죠.

“어느덧 대학 생활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네요. 남은 기간 후회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신나게 놀아보세요. 오늘은 분명히 공부하는 날은 아닐 것 같네요.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네, 그렇죠, 놀아야지요. 하하하, 자, 다같이 건배할까요?”

교수님이 앞장을 서니 학생들은 울고 싶은 애 뺨 맞은 격이었어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시고 떠들고 신이 났죠.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질 무렵, 교수님이 옆에 앉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거셨어요.

“지도희 학생이지? 대학원에 진학하길 원한다고 들었는데.”

“네. 실력은 모자라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교수님같은 길을 걷고 싶어요.”

“도희 학생은 수업 시간에도 한결같이 성실하고, 학교 성적도 늘 우수하기 때문에 내가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잘 할 수 있을 거야.”

사람 좋아 보이는 교수님은 반백의 긴 앞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며 미소를 띠셨어요. 교수님은 말씀도 잘하고, 인물도 좋아서 매스컴에도 자주 나오셨어요. 특히 소셜미디어에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계시기도 했지요. 따라서 교수님 인기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있었어요. 소위 스타 교수님이었어요. 그날은 연례행사인 지도 교수님과 4학년 학생들의 만남이었지만 조금 더 특별한 것이 있었어요. 얼마 남지 않은 졸업 후 진로를 생각해야 했거든요. 나처럼 학교에 남길 원하는 친구들은 교수님 밑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조교를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고, 제약 회사, 공무원, 병원, 약국 취직을 원하는 사람들은 교수님의 넓은 인맥에 연이 닿아있는 마땅한 곳을 추천받아야 하는 중요한 자리였지요. 그런 만큼 나는 조신함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난데없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미스 하이드를 견제하기 위해 술을 안 마시려고 했어요. 하지만 교수님이 막무가내로 권하셔서 어쩔 수 없이 홀짝홀짝 술잔을 입에 대었어요. 다행히 그 정도 용량으로는 그 녀석이 깨어날 정도가 아니었어요. 그 즈음은 점점 더 높은 알코올 농도를 원하고 있었거든요. 아주 게을러졌어요. 잘 일어나려고 안 했어요. 그래서 안심했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