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폭주하다.
처음에는 내가 착각한 줄 알았어요. 내 무릎 위에 뭔가 차가운 물체가 닿는 느낌이 든 거예요. 깜짝 놀라 내려다 보았어요. 교수님의 손이었어요. 그날따라 치마를 입고 간 터라서 좀 당황스럽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교수님도 많이 취하셨으니까. 아마 바닥을 짚으려다 잘못 내려 놓으셨을 거려니 했지요. 몰래 손을 들어 바닥에 놓아드렸어요. 그런데 잠시 후에 그 손이 다시 제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거예요. 그렇게 몇 번을 교수님 손이 바닥과 제 무릎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요. 교수님이 내 손을 밀치고 내 다리를 몇 번 쓰다듬었어요. 그러면서 차가운 손가락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거예요. 지네가 기어가듯 허벅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갔어요. 주위를 둘러봤어요. 누가 보는 사람이 있는지. 학생들은 모두 취해 반쯤 뜬 눈으로 덕담을 하시는 교수님 입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나도 교수님을 쳐다봤어요. 교수님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추더니 찡긋 윙크를 하시더군요. 잘생긴 외모에 여유있는 미소, 자기애와 자신감이 가득 찬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표정이었어요. 잠깐, 그렇다면 지금 내 다리 위를 기어 다니고 있는 그 손가락은 우연이나 실수는 아니란 말이 되더군요.
“이봐요, 선 군.”
조용하던 방안이 더 조용해졌어요. 교수님 말씀이 조곤조곤 이어지던 방안이라 조용했었고요. 엄숙한 교수님 말씀을 끊고 일개 학생인 지도희가 끼어들어 소리쳤기 때문에 더 조용해진 거였죠. 하지만 이렇게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질 수는 없는 건데.... 결정적인 이유는 그 방안에 소위 ‘선 군’에 해당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던 데다가, 그 한 명이 바로 교수님이었기 때문이에요. 더군다나 똑바로 교수님을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외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부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반쯤 감겼던 친구들의 눈이 네 배로 커졌어요. 그러니까 보통 눈의 두 배가 된 거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모두가 숨을 멈추었던 것 같아요.
“어이, 선 군. 이봐, 지금 당신이 만지고 있는 거 내 다리야. 설마 술이 취해 당신 다리와 헷갈리는 건 아니지? 그리고 그 더러운 손이 왜 자꾸 꾸물거리면서 위로 올라와. 그러다가 아랫도리까지 닿겠다. 야, 그만 안 할래?”
그건 지도희의 목소리가 아니었어요. 그래요, 미스 하이드가 외치고 있었던 거예요. 교수님 입이 딱 벌어졌어요. 아까부터 벌어져 있던 친구들 입은 지금 더 크게 벌어졌고요.
“왜, 아직도 손을 안 치워? 당장 떼지 못해?”
“아니, 도희 학생 무슨 소리야?”
교수님이 되물었어요.
“뭐지? 그 황당하다는 표정? 진짜 황당한 건 나야, 이 자식아. 아까 네가 말했지? 네 딸이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며. 그래, 누가 네 딸 허벅지를 그렇게 떡주무르듯 만져 주면 좋겠니?"
친구들 눈길이 모두 테이블 밑에 있는 내 다리에 닿았어요. 교수님은 재빨리 손을 떼더군요. 하지만 볼 사람들은 다 본 이후였어요. 교수님의 사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변명이 따라오더군요.
“지도희 학생이 착각한 거 같은데 그건 오해야. 난 바닥을 짚으려다가 그만. 나도 몰랐네.”
“바닥을 잘 짚으라고 내가 아까 여러 번 바닥에 손 내려 줬잖아. 내 물컹한 다리가 저 딱딱한 바닥이랑 어떻게 헷갈려? 그래, 바닥이랑 헷갈렸다 치자. 그렇다면 너는 뭐 하려고 바닥을 그리 비벼댄 거야, 응?”
“글쎄, 아니라니까, 도희 학생, 그건 도희 학생의 오해라고.”
“나를 조교로 남겨주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너랑 잠이라도 잘 거라고 생각했어? 다른 학생들은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어림도 없어, 이 새끼야.”
교수님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옷걸이에서 양복 윗도리를 들어 밖으로 나가려 했어요. 그러다 잠시 학생들을 돌아보더니,
“학생들, 오해 없기를 바라네. 도희 학생이 술이 많이 취해서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내일 도희 학생 술 깨면 차차 얘기하지. 오늘은 모두 조심해서 돌아가고, 저녁값은 내가 계산하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
교수님이 서둘러 나간 후 3분 정도 침묵이 흘렀던 거 같아요. 정말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 어색한 시간 동안 움직인 건 나뿐이었어요. 나는 목이 말라 벌컥벌컥 맥주를 따라 마셨어요. 잠시 후, 몇몇 여학생들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어요. 비난의 손길이 아니었어요. 동감, 위안, 그리고 고마움의 표시였던 것 같아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