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짜리 소설]
도와줘요, 하이드 양(孃)-15

미스터 하이드

by 파란 벽돌

과장은 내가 건넨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나는 보았어요. 과장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금방 알 수 있었어요. 그것은 미스터 하이드였어요. 미스터 하이드는 느릿느릿 과장의 가슴을 통해 얼굴로 기어 올라왔어요. 그리고 과장의 가면 뒤에 숨어서 숨을 몰아쉬었어요. 그가 내뿜는 뜨거운 공기가 내 코끝에 닿는 느낌이었어요. 그렇다면 얘기가 쉽게 풀릴 수 있어요. 미스 하이드를 키워 본 나로서는 미스터 하이드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기가 더 수월했어요. 오히려 상대하기 편한 상대를 만나게 된 거예요.

“이런 조건들을 들어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 과를 위해서? 흥미로운데요.”

미스터 하이드에게 인사치레는 필요 없어요. 시간 낭비일 뿐이죠. 그가 탐내고,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날 것으로 던져주어야 해요. 그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일단 허락만 해 주시면 더 파격적으로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음... 그래요? 잘 됐군요. 잠시만 생각 좀 해보고.”

과장이 눈을 감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가면 뒤의 미스터 하이드는 핏발 선 눈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입맛을 다시면서 말이지요 과장이 한참을 고민하더니 어두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럽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죠.”

이제 첫발은 겨우 내디딘 거예요. 지도희는 조그만 날개를 달았어요. 하지만 방심하면 또 한순간 이카루스의 날개가 되고 말 거예요. 나는 5년 전 이미 그런 경험을 했었어요. 이번엔 실수가 없어야만 해요. 계약서도 쓸 수 없는 계약이라 누군가 어겨버리면 하소연할 데도 없어요. 그만큼 위태로울 수 있는 것이지요.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산 제약에서, 그리고 도희 씨가 말하는 더 이상의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군요.”

“네, 저는 물론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군요. 기대가 커요. 그건 그렇고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더 물어보고 싶은데, 오늘 저녁 식사나 같이 할까?”

“그러시죠, 몇 분 자리를 준비할까요?”

“우리 둘 사이의 거래인데 누굴 부를 수 있겠나?”

“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7시경이 괜찮으실까요?”

“그러지.”

나는 공손히 절하고 방을 나왔어요.

과장은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회사가 제시한 조건만으로 만족하지는 않을 거예요. 문제는 우리가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걱정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래도 완전 불가능이 일말의 가능으로 바뀐 것이니까요. 일단 굴러가기 시작한 돌은 그대로 구르게 내버려 두어야 해요. 그것이 그대로 멈춰버릴지 큰 지진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더군다나 이것은 지도희의 날개가 꺾이느냐, 태양을 향해 계속 날아가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