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서 Mar 11. 2024

시간이 흘러야만

30x35cm, 2022


어른이 되지 못한 채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른 흉내 내기만으로도 벅차,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채로 아이를 낳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기준도, 신념도, 멘토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허튼짓을 모조리 따라 했다. 가랑이가 찢어졌고 우울증에 걸렸다. 그때부터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삼십 평생 책과 담쌓았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무섭게 몰입했다. 생존이 걸린 것처럼.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얻는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결론에 이를 수 있었던 십 년이었다. 긴 시간이 소모전처럼 느껴졌던 그 시절을 지나오고서야 나만의 기준과 신념이 생겼다. 책이라는 멘토가 생겼고, 아이를 무사히 키울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그때보다 나은 지금의 내가 있다. 소모전이 아니라 값진 전투였다.


시간이 흘러야만 해결되는 문제가 있다. 당시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답을 찾지 못했던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해하는 것처럼. 나는 오늘도 여전히 그런 문제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순리대로 흐르는 계절처럼 다가와,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게 될 그 언젠가를.



작가의 이전글 온전히 채워질 우리의 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