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벚꽃을 만끽하며 공원을 걷다가 갑자기 들려온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커다란 나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새파란 축구복 상하의로 차려 입은 어떤 남자가 부부젤라 같은 나팔을 불며 팔을 상하좌우로 마구 흔들면서, 내가 걷는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공원을 걷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 사람을 보고 홍해처럼 양 갓길로 헤쳐 모였다. 나팔 소리에 놀라기도 했겠지만, 사람 많은 공원에서 나팔을 불며 팔을 마구 휘젓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신나서 뛰댕기는 자기 아이를 얼른 그 남자의 반대편으로 끌어 당기는 사람도 있었고, 몸을 모로 돌려 남자의 반대편으로 붙어 서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4년 전 미국 유학 시절,
오전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안 카페테리아로 갔다.
카페테리아 안에는 피자, 핫도그, 스시, 샐러드 같은 걸 푸드코트 형식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음식을 사서 카페테리아 밖의 테이블에 앉아 먹고, 곳곳에 있는 쓰레기통에 먹은 일회용 그릇을 버리는 시스템이었다. 카페테리아 밖에는 동그란 탁자와 의자가 군대군데 있고, 커다란 쓰레기통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학생들이 먹고 나서 스스로 치우기는 하지만, 파란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맨 카페테리아 알바생들이 테이블에 정리되지 않고 남은 쓰레기를 치우거나 테이블을 닦거나 가득 찬 쓰레기통을 정리하기도 한다.
거기까지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다.
당시 나는 나이가 들어 다시 경험하는 대학생활, 그것도 언제나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캘리포니아의 대학 캠퍼스에 있다는 사실에, 매일매일이 즐거웠고, 카페테리아의 풍경도 나에게는 재미있는 관찰거리 천지였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조금 살이 찌고 움직임이 느릿한 어떤 사람.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알바생이 학생들이 먹고 일어난 테이블을 닦고 남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그는 느릿하지만 꽤 능숙하게 테이블을 치우고 쓰레기를 처리했다. 물론 그의 행동은 늘 하던 일이라는 듯 능숙했다. 하지만 그가 치우고 지나간 자리는 다른 비장애인 알바생이 와서 다시 한 번 닦기도 하고 의자를 가지런히 하기도 했다. 2인 1조로 일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동안 그의 행동을 눈으로 쫒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에게서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너무 생소했다.
한참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모습이지만, 식사하는 미국 학생들 아무도 그의 그 모습을 어색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알바생도, 그 알바생이 치운 자리를 다시 살피던 다른 알바생도 아무도 어색하지 않았다.
늘 하던 일이고,
늘 보던 모습이라는 듯
돌이켜보면, 나는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카페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특별한 행사나 상황이 아니라, 내 일상 어딘가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는 것 자체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직업인으로서 생활하는 모습도 생소하고, 그 모습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생소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면,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각자 할 뿐이라는 것.
머리로는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날 머리로만 알고 있던 걸 온 몸으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