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면 엄마랑 종종 남포동에 간다.
나는 남포동과 광복동도 잘 구분 못하지만, 엄마는 이 동네 지리에 훤하다.
엄마가 여고 시절 살던 동네이고, 엄마가 자주 산책하던 용두산공원도 있고, 거의 50년 전부터 있던 약국도 있다. 엄마랑 남포동에 가면 엄마가 여고 시절 자주 갔던 회국수 집에 꼭 들른다. 내 입에는 딱히 그걸 먹으러 갈 정도의 맛은 아닌데, 엄마에게는 추억이고 습관 같다.
식당 테이블이 굉장히 독특한 구조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주방이 있고, 술집에서 바를 사이에 두고 바텐더가 손님에게 술을 건네주듯이, 타원형의 기다란 바 안쪽에서 서빙하시는 아주머니가 손님들에게 국수를 건네준다. 테이블 위에서 여기 저기 초고추장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고, 자리에 앉으면 육수가 담긴 찌그러진 주전자와 양은 그릇을 준다. 냉면집 같은 방식인데 육수는 멸치육수다.
들어오는 손님들 자리 안내, 주문 접수, 주방 전달, 나오는 국수 전달, 그릇 치우고 테이블 닦고 또 다른 손님 안내까지 착착 착착. 기본적으로 넓지 않기 때문에 테트리스를 해야 한다. 서빙하시는 그 분은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서면 인원수별로 포착해서 재빨리 자리를 안내한다. 보통은 바의 바깥쪽에 앉히지만 일행이 여럿이면 일행별로 두 명은 바 바깥쪽, 한 명은 바 안쪽에 앉히기도 한다. 착착 지시를 하면 얼른 그 자리에 가서 착석해야 한다.
키오스크보다 신속하고 서빙 기계보다 정확하다.
서빙하시는 분의 말도 행동만큼 무척 빠르다. 혹시 어디에 앉으라는 사인을 잘못 듣기라도 하면 찔끔 눈치가 보인다. 눈치껏 손으로 가리키는 위치의 빈자리에 앉는다.
거기 오는 손님들을 지켜보면 부산에 관광차 오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 분의 부산말을 못 알아듣는다.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또 혼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분은 전혀 손님을 혼내는 건 아니다. 그냥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지방 손님들은 불쾌하다고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정말이다. 그냥 말하고 있다. 혼난다고 느끼는 건 내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없다. 그 분의 사인에 따라 재빨리 자리를 잡는다. 주문을 신중히 생각할 틈이 없다.
주문해놓고 잠시 ‘아, 메뉴 바꿀까?’ 생각해봐도 이미 늦었다.
국수가 벌써 내 앞에 와있다.
엄마는 정작 평소에 라면도 먹지 않을 정도로 국수류를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이 집에서는 무조건 회국수다. 김밥이 있기는 하지만 김밥 먹으러 오는 집도 아니다. 나는 회국수를 잘 먹지 않는다. 주로 당면국수나 잔치국수 중에서 고민한다. 충분히 고민했거나 중간 바꿀 시간이 있었더라도 결국 당면국수이냐 잔치국수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아줌마의 현란한 서빙 솜씨를 관찰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본다.
누군가의 집중한 말과 행동은 관찰할 재미가 충분하다. 신들린 서빙이다. 사람들은 지시에 따라 착착 착착. 앉고 먹고 자리를 뜬다. 재미있다.
회국수 집의 현란한 관찰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선다. 지금은 사라진 극장 자리.
엄마가 연애하던 친구와 자주 오던 극장도 이 동네란다. 엄마는 남포동만 오면 고등학교 때 했던 연애 썰을 푼다. 그 아저씨랑 결혼했으면 아빠 안 만났을텐데, 그러면 우리 딸도 없겠지. 나는 지지 않는다. 나도 다른 엄마한테서 태어나서 잘 살고 있을 거야.
이제는 나이 칠십이 다 되었다는 사실이 가끔 믿기지 않는다는 울 엄마.
엄마의 세월을 들으면서 나는 엄마의 여고시절이 상상되지 않는다.
흑백사진 속에서 본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가 이 남포동 거리를 쏘다녔을 모습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