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언저리. 퇴근길 1호선에 몸을 실었다.
서울 지하철은 정말 편리하다.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근무하는 나로서는 서울도로의 교통체증에 놀라기도 하지만,
지하철의 편리함에 다시 한 번 놀란다.
(교통체증에 시달리다 지하철로 바꿔서 느끼는 격세지감일지도 모른지만)
하지만 저녁 7시, 고작 7개역 가는 동안 신경이 곤두선다.
온갖 소리와 냄새, 타인의 체취, 옆 사람이 보는 유튜브 음성지원,
불가피한 신체접촉, 때로는 누군가의 고의적인 신체 접촉에 대한 두려움.
경도의 폐소공포증 증세가 있고 그래서 예민하고 걱정 많은 나로서는,
차보다 빠른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불편하다고 해도 될 정도.
그래서 항상 지하철을 타면, 객차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 문 근처로 간다.
연결 문 앞 노약자석 벽에 등을 대고 서면 제일 마음이 편하다.
왠지 내리는 문이 가깝게 느껴지고, 등 한 쪽이라도 벽에 대고 있으니 사람과의 접촉도 줄일 수 있다.
심리적으로도 고립감이 줄어들고 멀리 전광판을 바라보면 개방감이 느껴진다.
객차 한 가운데 서게 되는 일이 가장 두렵다.
만원 지하철에서는 사람을 뚫고 출입문까지는 갈 일을 생각하면 심란해진다.
생각으로는 양쪽 문을 다 이용할 수 있어서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고립된 느낌이 더욱 크게 든다. 폐소공포증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 같다.
오늘은 노약자석 벽에 등을 댈 수 있는 에이스석은 못 잡았다. 전체적으로 사람이 많았다.
그 자리까지 갈 수도 없었다.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노약자석 근처까지 떠밀려 갔다.
역 4개, 역 3개.. 남은 역을 보면서 내릴 역을 기다리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러 번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걸걸하지만 지친 듯한 중년 남자 목소리다.
외치는 소리와 동시에 갑자기 몸이 '후욱'하면서 떠밀려 들어간다.
어디로 더 갈 데가 있나, 싶었지만 지하철은 신비롭다. 일단은 수용적이다.
물론 노약자석에 앉은 어르신과 무릎이 맞닿다 못해 사이사이 무릎을 포갤 지경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처음에는 뭐라 말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내 몸이 떠밀려 감과 동시에 고개를 휙 돌려 보고 알았다.
휠체어를 탄 분의 인사였다.
언젠가 서울시 저상버스 예약시스템이 생겼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버스에 오를 수 있게 버스 높이가 보도블럭 높이에 맞게 계단이 생긴다.
한국에도 저상버스가 있기는 한데, 버스를 타겠다는 신호를 하기가 쉽지 않고 막상 신호를 해도 못 타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전에 버스 앱이나 버스 기사에게 전화로 예약을 하는 시스템.
이 시스템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만,
예약을 해서 타야 한다는 것 자체가 휠체어 이용자의 대중교통 이용이 마치 예외적으로만 가능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준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 등 붐비는 시간대에는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이 단서로 달렸다.
예약을 해서 타되, 출퇴근 시간 대는 말고 버스가 가능한 비어 있는 시간대에 예약해달라는 뜻.
공리주의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바쁜 출퇴근 시간,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탑승으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면에서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그럴 듯하지 않다. 장애인도 바쁜 출퇴근 시간에 출퇴근해야 한다.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데다 해결 방식도 틀렸다.
아저씨, 죄송할 필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