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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Oct 17. 2021

모두가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나의 인지행동치료 노트]

어린  억압받거나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인이 되면서 그로 인한 다양한 문제를 겪을  있다.  경험이다. 자연스러운 결과라 생각한다어린 시절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기억을  관리해나가야 한다는 .


어린 시절을 벗어났다는 것이 단지 생물학적으로 성인의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성인의 나이가 지나고도 몇 년간은 시험공부로 어린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여전히 부모님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 했고, 정신적으로도 독립하지 못했었다. 누군가 타인에 의해 내 생존이 영향을 받는 상황은 완벽한 자유를 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십  중반에 공부를 하러 처음 부모 곁을 떠났다. 20 원짜리 고시원 같은 원룸에 누워, 처음 자유를 느꼈다. 거실도 부엌도 없는 작고 답답한 그 조그마한 방에서 처음 자유를 느꼈다 말하려니 어색하고 우습다. 내 인생에 그 어떤 잡음도 만들어낼 수 없는, 완벽한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공간. 그 공간의 냄새, 온도, 조도. 그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 그 관짝같던 단칸방에서의 자유로움을 지금은 조금 더 큰 방, 조금 더 큰 집에서 누리고 있다. 혼자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해결해나가는 나만의 . 나는 점점 건강해져 갔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갔다. 그리고 많은 문제들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나의 정신적인 독립은 가속화되어갔다.

 달라 소리  필요 없으니까 
부모한테 전화도  한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전화를 받으면 저렇게 말씀하셨다. 부모님에게서 독립해서 좋은 점이 많았지만, 엄마에게 돈 달라고 할 필요 없는 바로 그 지점이 나는 특히 좋았다.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무능하고 무기력했고, 엄마는 불쌍했다. 어린 나는 아버지를 원망했고, 엄마는 가엾어해야 했다. 그리고 늘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엄마의 저 말이, 애써 모른 척 했던 엄마에 대한 부채감을 불시에 깊숙이 찔렸다. 하지만 그래도 모른척 했다. 엄마에 대해서도 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돈으로 해결했다. 부모님의 존재가 내 삶에서 멀어질수록, 가족의 존재로부터 멀어질수록, 나는 안정을 찾아갔고, 내 인생은 자유와 성공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성공하고, 행복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해온 엄마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조차도 내 인생에서 멀어져 주면
내 행복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엄마도 내 행복을 바라잖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른이  나는,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이루고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2 전쯤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하게 됐다. 그때 내 부모와 나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경험했다. 부모님은 영어못했고, 해외에서는 모든  나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에서는 어린 시절의 나와 부모님 관계가 뒤바뀌어 있었다부모님과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이해할지 모르겠다. 나도 처음인데, 질문을 쏟아내신다. 꼭 답을 구하는 질문은 아닐지라도 길 찾기도 바빠 죽겠는데 질문까지 쏟아내면 사실 짜증이 나지만 꾹 참는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가 그랬듯, 어딜 가든 엄마 손은 꼭 잡고 다녔다. 엄마의 보호자였다. 아빠랑은 손을 잡아 본 적이 없고 잡을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아빠는 엄마와 내 옆에서 혹운 뒤에서 우리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그랜드 캐년 서클을 돌고,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라스베이거스 공항으로 왔던 순간이다. 사람이 무척 많았다. 공항 자체도 사람이 많았고, 우리 탑승구 근처에 식당이 몇 개 있어 더 사람이 많았다. 엄마 손을 꼭 잡고 탑승구를 찾아가다 잠깐 사이 아빠가 우리를 놓쳤다. 나도 길을 찾느라 우왕좌왕,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엄마야 내 손을 꼭 잡고 나와 한 몸처럼 있었지만, 아빠는 뭔가를 쳐다보다가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잠깐 망설였다.


아빠를 부를까, 말까.
내가 부르지 않으면 
 길로 가다가 아마 우리를 놓치겠지.


왜 아빠가 우리를 놓쳤으면 했을까. 왜 아빠를 불러 세울까, 말까 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을까. 그 상황에서 답은 너무 당연하게 아빠를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었는데… 찰나였지만 진심으로 망설였던 그 순간. 순간이었지만 나는 강렬하게 번민했다. 그 여행 동안에는 아빠는 오히려 어린아이였고, 나는 어른이자 아빠의 보호자였다. 내가 가진 권력, 그 순간 아빠에게 내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력. 나는 마구 휘두르고 싶었다. 그것도 아빠가 가장 취약한 순간에…


그런 악랄한 마음을 먹은 내가 사람인가 싶었다. 만일 후자의 선택을 했다면, 아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너무 패륜이 아닌가. 


나는 왜, 그 짧은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나는 정말, 후자의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까? 한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배울만큼 배웠고, 타인에게 불친절하고 냉정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낯선 사람이라도 한국인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면 도와주는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아주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의 어린 괴물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나는 오히려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되갚아줄 기회만. 어린 시절의 불안과 원망을 갚아줄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더 큰 힘을 가지게 될 순간을 위해 칼을 갈며 기다렸을지 모른다. 그랬기 때문에 그 짧은 순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 어린 괴물은 슬프고, 외롭고, 아프지만, 상처 준 사람으로부터 사과를 받은 적이 없었고, 그래서 화해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과는 영원히 받을 수 없다. 

아빠는 나에게 상처를 준 기억이 없고, 내 어린 괴물의 슬프고, 외롭고, 아픈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다행이지 않은가. 아빠는 술을 마셔도 물건을 부수거나 우리를 때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끔은 무섭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서 뭘 할까. 이제와서 그딴 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내가 그나마 아빠에게 물려 받은 머리와 나쁘지 않은 외모를 활용해서 유리하게 살아가면 충분하지 않은가. 내가 어마어마하게 잘 살았다면, 과거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마어마하게 행복하게 살았다면, 과거에 대한 그런 사과에 집착이나 했을까. 지금 내 인생이 덜 마음에 드는 이유를 아빠에 대한 원망에서 찾는 것은 아닐까. 그럴 시간에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사과에 대한 내 집착에 합리적 의심이 든다.


게다가 나는 과연 사과받을 자격이 있을까. 어른이 된 나는 충분히 그때의 아빠를 이해할 수 있다. 아빠도 젊었고, 돈벌이에 지쳤고, 자식들이 버거웠으리라. 자주 무능했지만, 전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때의 아빠보다 어마어마하게 잘 살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지금도 사과 따위에 집착을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일일이 사과를 받을만큼 자식이었나. 나는 돌이켜보면 틈틈이, 꾸준히 아빠에게 복수해왔다.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의 그 날이 무척 강렬했지만, 그 전으로 돌아가도 소소한 복수, 아빠에 대한 무시, 저항 등은 늘 해왔다. 아빠에게 나도 대단히 좋은 자식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날, 그 공항 이후 나는
아빠의 불완전함을, 더 나아가
나의 불완전함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빠는 그렇게 사과할 만한 행동도, 나는 그렇게 사과받을 만한 행동도 한 게 없다. 그냥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었다. 나는 아빠와의 관계에서 내 행동의 매뉴얼을 정했다. 이 관계에서는 더 이상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매뉴얼대로 행동한다. 나는 아빠와의 이 정도 관계에 만족한다. 이제와서 대단히 아름다운 부모자식 관계까지 갈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티끌 하나 없이 원만하고 완전할 수 없다. 지금의 내가 아빠를 이 정도로 바라보고, 이 정도의 친절을 베풀 수 있게 된 데에 감사한다.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
딱 이 정도를 베푼다. 더 친절하기 위해 감정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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