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 거리에는 이미 사람들이 붐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을 기다린다. 신호등 앞 빈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기 위해 서성거리다 어깨를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갑작스레 의도치 않은 어깨춤을 춘다. 신호등 건너편에 보이는 하얀 보도블럭은 점점이 까맣게 채워져 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나는 걷는다. 걷는 방향에 있던 건물들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멀리 보이던 까만 풍경들이 성큼성큼 다가오기도 하고, 멀리 보이던 풍경은 멀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무리는 자꾸만 무리에 합류한다. 점점 하얀 보도블럭이 채워지고 무리가 더 큰 무리가 된다. 걷다가 함께 걷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동질감을 넘어 동일시된다. 너도 나도 여왕개미에 봉사하는 일개미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일개미 대열에 합류한다.
일개미들은 어딘가 홀린 듯 하나의 구멍을 향해 간다. 걸음은 홀린 듯 하지만 모두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나도 그렇다. 멀리서도 하나의 구멍을 찾아갈 수 있다. 나같은 일개미는 스마트폰 지도앱을 가끔 들여다 본다. 하지만 하나의 구멍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차곡차곡 구멍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대열 속 그 누구도 엉키지는 않는다.
내 머릿 속은 복잡하면서도 복잡하지 않다. 분명 10분 전까지 고민하던 업무가 아직 머릿 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머리가 작동하지는 않는 기분이다. 구멍을 향해서 앞으로 앞으로 걸을 뿐이다. 가끔 어깨를 겹치지 않게 움직일 뿐이다. 기교적이면서 매우 능숙한 움직임이다.
어릴 적 학교 운동장 구석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개미들의 행렬을 바라본 적 있다. "도대체 저 많은 개미들은 어디를 가는 걸까. 그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는 걸까." 그 때의 강렬한 의문이 풀렸다.
거긴 바로 지하철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