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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Oct 22. 2021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포만감

[나의 인지행동치료 일지]

이십 대의 거의 대부분을 고시공부를 하며 보냈다. 법대를 다녔지만 고시 공부를 처음부터 시작하지는 않았다. 빨리 취업을 하고 싶어 대학교 학점을 따면서 각종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공무원 시험은 정말 쉽지 않았다. 차라리 법 공부만 하면 되는 고시가 나을 것 같아 대학 졸업반 즈음 고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주 불안했다. ‘나는 반드시 합격할 거야.’라는 확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불안 때문에 힘들었지만, 나는 내 불안을 당연하게 여겼다. 사법고시는 방대한 공부량 때문에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시험이다. 경제력 있는 집에서는 고시공부를 언제까지 하든 생활비를 받아가며 공부하겠지만, 우리 집은 그렇지도 못했다. 생활비를 쪼개어 쓰고 매시간 매분을 쪼개가며 살았다. 잠시의 휴식 시간도  편안하게 못 지냈다. 공부를 하면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갔다. 그런저런 불안감은 나를 늘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공부하는 동안 가장 친했던 친구는 같이 고시공부를 하던 친구였다. 늘 여유롭고 나에게도 너그러웠다. 늘 내게 말했다.

“너는 너무 부정적이야.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도 될까 말 까야.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의 말을 열심히 들어줬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나 자신을 질책했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긍정적인 마음이 마음먹으려고 노력한다고 될 일인가. 그땐 어렸다. 정말 내가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이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긍정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뀌어야 하는 거였다. 상황이 지옥 같은데도 나는 잘 될꺼야, 라면 마냥 긍정하는 사람을 “사람 참 긍정적이야.” 라며 칭찬할 수는 았겠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는 합격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단순한 기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펼쳐도 모르는 부분이 적어졌고, 모의고사 점수가 올라갔다. 자신이 없어서 공부를 치밀하게 하면 할수록 자신이 생겼다.


나의 부정적인 생각은 장점도 있었다. 나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정적이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의 부정적인 생각은 근거 있는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했던 내가 부정적인 것은 너무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긍정적인 생각은 근거 없는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그는 마음이 여유로운 대신에 노력에도 여유를 부렸다. 마음이 긍정적인 걸로 게으름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함께 공부를 시작했는데, 나는 합격을 했고, 그는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나 내가 합격한 뒤에 그는 나에게 다시는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너는 너무 부정적이야.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도 될까 말 까야.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해.”


내가 다시 긍정적인 사람이 된 건 아니었다. 합격이 나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 건 아니었다. 나는 마냥 긍정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나는 근거가 있어야 긍정적일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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