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나서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내 책상이 있는, 의자를 회전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벗어나,
사무실 문턱을 넘고, 계단을 내려 간다.
그리고 회사 정문을 나선다. 동시에 회사용 가면을 휙, 벗는다.
사실 회사 근처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는 잘 벗겨지지가 않는다.
우연히 회사 사람들을 마주칠 근거리 구역에서는 내려 놓을 수가 없다.
소셔블(sociable)하지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항상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연한 만남에 어색하지 않은 반가운 미소를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눈치 보고 긴장하고 집중한다.
소그룹 회의와 전체 회의, 일대일 토의와 삼대삼 토의. 회의와 토의와 업무의 연속.
그 틈틈히 옆 사람에게 늘 재미있게 반응해줄 준비도 해야 한다.
나는 조직생활, 직장생활에 맞지 않다. 늘 생각한다. 하지만 열심히는 한다.
그러다 퇴근.
직장 근처가 삼청동. 안국동. 서촌. 북촌…
걷기 좋고 맛집도 많고 아기자기 갤러리도 많은 동네다.
나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회사 캐릭터는 잠시 넣어둔다.
일부러 퇴근할 때는 구두를 벗어두고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셔틀버스가 있지만 약속 아니면 잘 타지 않는다.
부지런히 동네 구석구석을 걷는다.
내 생애 언제 이 동네에 다시 근무하게 될지 기약이 없다.
오늘은 경복궁 근처에서 종각역을 향해.
1호선만 타면 되니까 시청역까지 걸어도 좋겠지.
하지만 아마 시청역 가기 전에 배고파 쓰러질 거야.
삼청동. 소격동. 재동...
동네 이름들을 생각하며 걷는다. 옛 서울의 흔적일지 모르지만, 한 개 동의 지역이 크지 않다.
유독 조막조막한 동들이 모여 있다.
북촌까지 가지 않아도 신식 한옥으로 지은 가게들이 많다.
가게마다 개성이 다 다르게 인테리어가 특색 있다.
10년 전 취업 준비할 때를 생각한다.
안국동이 우리 동네였으면 했었다.
취직은 잘 안됐지만, 서울 사람도 아닌 나에게 ‘서울’하면 떠오르는 건 강북이고,
특히 종로 일대가 진짜 서울로 느껴졌다.
아직도 강남은 잘 적응되지 않는다. 강남은 그냥 강남이다.
삼청파출소를 돌아 들어가다 빈티지 옷가게 발견.
빈티지 취향인 친구 생각이 난다. 친구한테 알려 줘야지.
이 집 말고도 다양한 스타일의 예쁜 옷가게가 연이어 서너 집 있다. 다 눈으로 요기한다.
언제 다시 여길 근무하겠어?
발바닥에 불이 나게 욕심껏 걷고 걷다가 종각역은 너무 멀다 싶어
중간 종착지로 요깃거리를 찾았다.
조선 김밥에서 나물 김밥 하나.
나그네처럼 다시 길을 떠난다.
본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잠시 생각한다.
그러다 이내 머리를 흔든다.
본래 어떤 사람이었으면 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