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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Dec 26. 2021

소박한 정원

EBS “건축 탐구 - 집”이라는 방송을 꼭 챙겨본다. 텔레비전에서 매번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유튜브로 챙겨본다. 요즈음은 넷플릭스에도 올라와있다.


집과 사람을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인데, 아파트가 등장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이 자연 속에 어우러진 집이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가 있는 집이었다.


인상 깊었던 방송 중에 제주도에서 구순이 넘은 어느 할머니가 작은 이층 집에 딸린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모습이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을 이제는 할머니 혼자 관리한다. 할머니의 세월 같이 오랜 세월 기른 나무와 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딱 내가 꿈꾸던 정원에 집이라 보는 내내 감탄했다.


평수가 그리 크지는 않은 이층 양옥집과 정원의 조화가 특히 돋보였다. 

정원을 위한 집 같기도 하고, 집을 위한 정원 같기도 했다. 집에서 정원이 훤하게 내려다 보일 정도로 집의 지대가 약간 높았다. 철마다 변해가는 정원을 실내에서도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원은 집보다 몇 배는 큰 평수였다. 큰 나무도 상당히 많고, 나무 사이사이로 목단이나 수국처럼 수 년을 길러야 그득하게 피워주는 다년생 꽃나무도 많았다. 그래서 정원을 거닐면 작은 숲에 있는 기분을 거뜬히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딱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디자인. 

그 집을 마음 속에 찜콩, 저장해놨다. 나도 이다음에 집을 지으면 그렇게 지어야지. 나는 나고 자란 곳이 시골도 아니고, 할머니 할아버지 사시던 집이 시골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에게는, 집이라는 정형은 아파트이다. 하지만 식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정원 있는 집을 꿈꾸게 됐다.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가면, 내가 바라보는 시야에서 아름다운 나무와 정원 모습을 발견하면, 꼭 촬영해둔다. 마음속으로 그 모습을 나중 내가 가질 정원에 배치해본다. 정원에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떤 조경을 할지 마음속에 하나하나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최근 제주도 여행길에 발견한 돌담과 귤나무와 푸른 하늘의 조화를 사진으로 담았다. 정원을 갖게 된다면 귤이나 레몬 같은 과실나무를 몇 그루는 꼭 심고 싶다. 


예쁜 돌담은 귤나무랑 찰떡궁합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어딘가



그리고 그 돌담 틈에는 이런 꽃 무릇들이 피겠지. 처음에는 심어 두고 그러다 몇 년 시간이 흐르면 새로 심지 않아도 계절이 흐르면 저절로 피고 지겠지.

제주도 서귀포시 어딘가


물론 아름다운 꽃나무도 꼭 있어야겠지. 

과실나무가 좋은 건, 과실은 꽃이 핀 뒤에 열리니까 당연히 과실나무는 꽃나무이기도 하겠지만... 동백처럼 꽃송이 채로 툭 떨어지는 나무 말고, 목련처럼 꽃잎이 크고 티나게 지는 나무 말고, 잔꽃잎이 흐드러지게 꽃비처럼 떨어지는 벚꽃나무나 매화나무는 필수. 


아름답고 풍성한 꽃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어린 나무를 심어 땅에 자리 잡게 해야 하는데... 이 사진을 보니, 땅도 사질 못했으니 괜히 마음이 더 급해진다.

 

미국에서 다니던 학교 캠퍼스의 꽃나무


키가 아주 큰 느티나무는 한 그루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나무 아래에 넓은 평상을 만들어 거기 누우면, 여름날 나무 그늘이 얼굴 위로 어른어른하면서 시원한 그늘을 줄 것이다.


집은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집보다는 몇 배로 큰 정원. 나무로 집 울타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키 큰 나무 위주로 집 둘레에 심고, 나무의 키보다는 낮게 제주도 집들 같은 돌담을 쌓아야지. 나무 다음으로 집에서 가까운 구역에는 계절마다 피고 질 꽃을 심어야지. 꽃들의 키에 따라서 크고 작게 그래서 조화롭게 보이도록 심어야지.


집 근처 정원 중앙에는 작은 연못도 만들어야지. 연못이 필요한 이유는 연꽃을 심어야 하니까. 연꽃이 피는 계절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지만, 연꽃만한 아름다움도 드무니까.


물론 정원 한쪽에는 텃밭도 만들어야지. 직접 키워 바로 식탁에 올리는 기쁨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더라도  손으로 하나하나 나의 정원을 만들어갈 날이 언제쯤 올까. 3-4 뒤에 전역을 하면,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는  생활도 청산할  있다. 부대 바뀔 때마다 돌아다니면서 정착할 땅을 찾아야지. 그때를 기다려서 적당한 지역에 좋은 땅을 사야지.


상상을 글로 하고 보니 소박한 정원이 맞나 싶다. 너무 다 갖춘 정원이 아닌가. 상상이 모두 현실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중요한 건, 나의 정원. 

나의 정원을 갖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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