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크고 작은 일을 겪는다. 그러다 보면 안 했으면 좋았을 말을 하고 안 해도 될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은 한동안 마음이 찌릿찌릿한다. 문득 어딘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괜찮아. 담부터 안 그러면 돼.’라고 수백 번 되뇌면서 자기 위로를 퍼부으면 양극을 왔다갔다 한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사실 작은 일이고 작은 말이었는데, 고쳤다고 생각했던 내 단점을 다시 마주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단점이라는 것이 그렇다. 고쳐졌다 싶어서 방심하고 있으면 다시 올라온다. 마치 ‘그런 줄 알았지? 아직 아니야. 더 노력해!’라고 내 뒤통수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람에게 중요한 자질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특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부족한 나를 견뎌내는 능력”이라 생각한다.
성실함, 영리함, 배려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 특히 부족한 나를 한평생 버틸 수 있는 바위 같은 자세라 생각한다.
요즈음 나는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더 솔직하자면, 꽤.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지하 심리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조금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너는 이 정도는 우쭐해도 된다’고.
누군가를 은근히 무시하고 우위에 서려는 나의 성품으로 인해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마다 질책하고 자제시키고 방향을 바로잡았다. 그래도 한 20년 가까이 노력해서인지 최근에는 드물었다.
오늘 그 드문 일이 일어나고 보니, 마음속이 더 콕콕 아프다.
‘너는 아직도 멀었다!’
내 속에서 가장 아프게 나에게 말한다.
집에 오자마자 거실에 작은 램프 하나만 켜 두고, 미뤄두었던 분갈이를 한다. 호접난 5개와 스킨답서스, 산호수가 함께 심겨 있던 근사한 난 화분. 근사하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선물 받을 때 호접난이 한 번 피고는 꽃대 소식이 없다.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뿌리가 썩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호접난을 하나씩 꺼내 수태를 털고 원인을 파악하고 다시 이렇게 저렇게 정리하는 등 일이 너무 버거워 보여 계속 미루어 두기만 했었다. 이런 날 손대면 딱이겠다.
화분에서 식물을 덮고 있던 이끼 장식을 들어내고, 호접난, 산호수, 스킨답서스를 모두 꺼냈다. 한참이 걸려 호접난 뿌리에 얽힌 수태를 분리했다. 모두 꺼내니 바닥에 스티로폼 조각들이 나온다. 화분 무게를 위해서 바닥에 스티로폼을 깐다고는 하는데, 식물에게 무해할까 잠깐 생각한다. 스티로폼은 버리고, 바크, 이끼 장식, 수태를 재활용할까 해서 햇볕에 마를 수 있게 준비한다.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한다. 꺼내놓고 보니 이것저것 많이 들었었네.
바크는 나뭇가지나 나무뿌리들을 잘라 놓은 유기물이라고 하는데, 촉감이 좋다. 처음에는 분리하려고 손을 대었는데, 자꾸 만지게 된다. 흙의 질감과는 조금 다르지만, 만지다 보니 점점 기분이 푸근해진다. 이걸 ‘풀멍’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나는 분갈이를 하고나 식물의 시든 잎을 떼는 그런 일을 할 때 장갑을 잘 끼지 않는다. 손톱과 손주름 사이사이에 흙이 끼기는 하지만, 그 감촉을 포기할 수 없어서이다. 매일 흙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손톱 밑에 흙먼지가 끼는 건 머리를 감고 나면 사라진다.
호접난 뿌리를 물에 깨끗이 씻었다. 곱은 아기 손가락을 펴 사이사이를 닦아주는 것처럼 뿌리 사이사이를 펴 뽀독뽀독 문질렀다.
잎 가까이에서는 새 뿌리가 나오고 있는데, 수태에 심겨 있던 옛날 뿌리들은 시들한 건지 아예 죽은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뿌리를 만져서 바싹 마르거나 색깔이 아예 시커멓게 변한 부분은 가위를 소독해서 잘라버렸다. 왠지 내 마음이 시원하다.
아직 수분기가 있는 뿌리는 되도록 살려둔다. 이런 걸 보면 식물도 사람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 약간 기분이 좋아진다. 일말의 가능성이 보일 때에는 한 번 더 기다려 주어야 한다.
수경재배를 할지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은 못했다. 수경재배를 하더라도 호접난은 물에 푹 담그는 게 아니라, 뿌리 아래쪽에 물을 약간 담궈주는 정도이다.
수경재배가 자주 물을 갈아줘야 해서 귀찮지만, 뿌리를 들여다 보고 싶어서 수경재배로 할까 싶다.
일단은 투명한 컵에 담았다. 당분간은 뿌리의 변화를 관찰해볼 생각이다. 뿌리를 잘라 상처가 났으니 하루 정도는 물기를 말려야겠다.
두 시간 가까이 걸려 화분을 비우고 흙을 정리하고, 유리병과 유리컵을 꺼내 호접난을 하나씩 담았다.
오늘의 할 일을 끝냈다. 손을 부지런히 놀리는 동안에는 나를 비난하는 마음도 잠시 멈췄다. 나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진짜 반성을 할 여유가 생긴다.
어떤 잘못으로 나라는 사람 전체를 형편없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딱 그 잘못의 크기만큼만 문제일 뿐이나. 그러니 너는 지금도 괜찮은 사람이다. 잘못한 그 부분만 덜어내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뿐이다.
나 자신을 비난할 시간에 차라리 손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리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진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될 때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