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지행동치료 일지]
오늘 어떤 근사한 아이가 내 빨간 아이폰이 예쁘다고 했어요. 게다가 나는 빨간 차를 타거든요.
“아이폰도 예쁘고,
차도 예쁘시네요.”
아, 예쁘다니… 사실 내 아이폰이나 내 차가 예쁘기는 해요. 나도 그래서 빨간 아이폰, 빨간 차를 샀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정말 그랬어요. 그런 예쁜 말들.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나이 사십이 되고, 이런 나를 나는 꽤 마음에 들어 하기로 ‘결심’했고, 실제로 내가 나를 충분히 예뻐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아니, 솔직하게 말할게요. 그냥 안 듣고 살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아요. 못 들을 것 같은데, 못 듣는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안 듣는 걸로 결심하는 게 내 성격에 더 어울리는 일이었거든요.
그런 말, 예쁘다는 그런 말. 안 듣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오늘 그 아이의 그 말에 그간의 결심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나에게 예쁘다고 한 것도 아닌데… 나를 예쁘다고 하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그 말을 할 때 그 아이는 나와 눈을 맞추고 나를 바라봐 주었어요.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이었어요. 심지어 그 아이의 그 시선에 비친 내가 반짝반짝 근사하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정말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정말 물어보고 싶어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 아이에게 묻지는 않았어요. (그럴 정도로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거든요.) 그 근사한 아이가 정말 그렇다고 말해줄 것 같지도 않았고요.
달콤한 감정과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이 기분이 내 인지능력을 망치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고 있어요.
아, 그 아이는 정말 근사한 아이였어요. 누가 봐도 근사하게 볼 아이였어요. 하지만 내건 아니었어요. 절대 내 것이 될 수도 없고요. 하지만 여기에서만 말할게요. 정말 기뻤고 달콤했어요. 너무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마치 처음 듣는 말 같았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몇 살이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직장에서 몇 년 선배인지… 그런 것들 다 잊게 만들 만큼.
어릴 때 우리 오빠는 구슬치기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우리 집은 5층짜리 맨션이었는데, 동네 아이들한테 딴 구슬을 바지 주머니 가득 넣고 계단을 올라오던 오빠가 4층 즈음 올라왔을 때 바지 주머니가 터져서 구슬들이 계단 아래로 따 글 따 글따글거리면서 굴러 내려간 적이 있었어요.
오빠 구슬 통은 늘 가득 차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그 많은 구슬 중에 오빠가 제일 아끼는 녀석은 있었어요. 내 눈에는 다 비슷비슷한 그 많은 구슬 중에서도 오빠는 그 구슬을 바로 골라냈어요.
구슬치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크기도 맞춤한 그 구슬을, 이미 손때가 반질반질한 그 구슬을 다시 잘 닦아서, 구슬 받침대로 만들어둔 안경닦이 성전 위에 잘 올려두었어요. 오빠는 손도 못 대게 했지만, 나는 오빠가 없을 때 그 구슬을 꺼내 만져보기도 굴려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게 다였어요. 구슬치기 연습도 했지만 구슬치기 규칙조차도 알 수가 없었어요. 오빠는 내가 자기 구슬을 만질까 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왜 지금 갑자기
그 구슬이 생각나는 걸까요?
성전에 올려진 그 위풍당당한 자태의 구슬. 하지만 그런 예쁜 구슬은 내 차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언젠가부터 포기했었거든요. 그 아이는 그런 구슬 같은 사람이었어요. 너무 귀하고 한편으로는 내 영역으로 들일 수 없는,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구슬.
나이 사십 가지고 뭘 그러냐고. 더 살아보라고 말할 분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탐이 났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금방 받아들였거든요.
하지만 솟아나는 탐심까지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걸 누르고 누르느라 오늘은 피곤이 일찍부터 몰려옵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새 날을 기다리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자고 나면 감정과 느낌의 소용돌이는
잦아들고, 한 걸음 떨어져서
그 예쁜 감정의 구슬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눈만 남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