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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Jun 21. 2022

덧없음을 생각한다

[나의 인지행동치료 일지]

저녁거리나 살까 싶어 하나로마트에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함박 핀 작약꽃을 발견했다. 활짝 핀 작약꽃 너댓 송이 묶음이 고작 오천원. 서울에서 작약꽃 한 다발을 사려다가 너무 비싸 내려놓고 말았다. 이런 시골 하나로마트에서 고급스러운 작약꽃을 만난 것도 반가운데, 가격까지 반갑다. 두 묶음을 덜렁 집어 와 꽃병을 있는대로 꺼내 방방마다,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작약꽃을 꽂아 두었다.


이사 온지 채 1주일이 되지 않았다. 아직 낯이 설은 이 집이 갑자기 내게 익숙한 것들로 꽈악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내게 익숙한 것들. 다름 아닌 식물의 향. 살아 있는 것이 풍기는 내음. 꽃과 꽃대와 꽃잎에서 올라오는 푸릇푸릇한 내음. 약간은 축축하고 쌉싸름한 식물의 향. 다만 꽃향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꽃에서만 나는 향기는 이 식물의 향에 비하면 오히려 비중이 적다. 푸릇푸릇한 연록색의 방울방울들이 집안에 가득 차는 것 같다. 집은 조금더 살만한 곳이 된다.


하지만 작약들은 갑작스러운 더위에 몇일 못가 주저 앉았다. 싱싱한 생화들은 2주 정도는 너끈한데, 이미 활짝 핀 꽃을 구입했으니 그 생화들과는 수명이 다르겠지. 게다가 6월인데 갑자기 낮기온이 30도에 가까워지고, 창문을 꼭꼭 닫아 놓은 낮시간 동안 꽃이 담긴 물의 온도가 올라가고, 꽃들은 찌듯이 익혀졌으리라. 시든 꽃을 한 두 송이 버리고, 물에 담겨 물러 터진 꽃대를 자르고, 잎도 떼어낸다. 아주 차가운 물에 작약 가지를 담가본다. 이렇게 하면 수명은 조금 더 늘려줄 것이다.


그러고도 이틀이 못되어 집은 다시 시든 꽃의 추적추적한 향으로 채워졌다. 곰팡이 향 같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장의 물컹한 냄새 같기도 하다. 주저 앉은 몇 송이는 치우고, 아직도 덜 주저 않은 - 하지만 시간 문제인 - 작약 두 송이를 남긴다.


시큼털털한 나의 미련은 길다. 이상하게도 나는 꽃잎들이 완전히 주저 앉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과 감정은 늘 함께 가지 않는다.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가지 않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잡힐 듯 잡히지 않기도 하고, 그러나 잠깐 스쳐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생각으로는 다 알면서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장난.
    
 
좋아하는 마음도,
사랑스러워하는 마음도
덧없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꽃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하다보면, 나 좋아서 잘해주고 혼자 상처받는 일이 있다. 단 한 번도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한 적 없고, 그 무엇도 애걸하지 않는 그 사람의 고고함이 깊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눈치도 안 보고, 애걸도 하지 않는 그 사람이 원망스럽다. 그 사람을 원망하느니, 차라리 나 자신의 뺨을 쳐라. 마음껏 원망도 할 수 없는 것은 내 생각은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뿐이다.  


그 사람은 함박 핀 작약꽃처럼 그렇게 있었고, 그렇게 작약이 시드는 것처럼 가버렸다. 원래 그렇다. 사람 사이 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은 원래 그렇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꽃잎이 완전히 주저 앉지 않았더라도 푸릇푸릇한 향내음이 물컹한 냄새로 변해가는 걸 알고 있었지 않나.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라지는 데에도 세월과 과정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완전하게 안다. 모든 물질이 그렇게 덧없다. 모든 물질이 그렇게 덧없음을 완전하게 안다. 영원한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확실하게 안다. 물질의 덧없음은 슬퍼하거나 원망할 일이 아니다. 그냥 그럴 뿐.


그러니, 숱한 덧없음에도 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려고 애쓰는 너 자신도 원망하지 마라. 나 자신도 곱게 봐라. 애쓰고 있고 덧없음을 알고 있는 너 자신을 곱게 봐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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