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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Jul 12. 2022

규칙적인 사이클에 일단 밀어 넣는다

[나의 인지행동치료 일지]

불안, 우울, 슬픔, 회한과 후회, 자책 등이 뒤섞인 채 밀려들 때가 있다. 나쁜 일은 항상 같이 찾아오고, 설상이 가상이라고 했다. 잘못된 인지의 매듭을 찾아낼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 되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궤도를 벗어난다. 태양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공전하던 행성이 갑자기 태양에 가까워져 모든 것이 녹아내리거나, 지구 공전궤도가 바뀌면 태양 에너지가 변화되어 빙하기가 시작될 수도 -Winter is Coming - 있다는 복잡한 법칙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다.


온갖 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나는 궤도를 이탈한다.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지 않고,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자지 않고, 밥을 먹어야 할 시간에 먹지 않는다. 나를 파괴하려는 욕구를 가진 괴물이 헤집고 다닌다. 그래서 작은 마음의 어딘가 고장 났을 뿐인데, 몸도 상하고, 성적도 실적도 안드로메다로 간다. 그러면 마음을 더욱 심하게 고장 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있을까..?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궤도를 조금만 벗어나게 하는 일이다.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만 않도록! 어차피 궤도를 딱딱 도는 것은 되지도 않을 일이니 내려놓는다. 온갖 감정과 과거가 나를 완전히 압도하지만 않도록!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규칙적인 사이클이 이런 때에는 쉽지 않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고 싶어도 조금만 늦게 일어난다. 치아가 제 할 일을 하기 싫어할 때는 단백질 음료나 두유를 천천히 마신다. 대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일어나는 시간에 딱 일어나야 하는데, 오늘은 조금 봐주는 거야! 사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마시는 걸로 봐주는 거야.”


온갖 것이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나 자신과의 작은 협상에 성공하기는 습관으로 만들면 가능하다. 작은 협상에 성공하면 작은 성취를 맛본다.


누가 뭐래도
내가 잘못되기를 가장 바라지 않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은 조그마한 동력을 준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면, 그 온갖 것들을 해결할 기운이 스멀스멀 생긴다.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그러는 동안 온갖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사실 보통 이런 것들은 기분이나 느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궤도를 완전히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궤도를 조금만 이탈하면
다시 돌아오기도 쉽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궤도에 올라타 살아가면 된다. ‘흥! 방금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라고 시치미를 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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