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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Jul 13. 2022

아무래도 지구는 아닌 것 같아요

[나의 인지행동치료 일지]

얼마 전 회사 동료가 오랜만에 고향 부모님댁에 갔더니 아버지가 하루 종일 채널을 돌려가며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보시더란다. 친구 눈에는 어차피 그 자연이 그 자연이고, 머리가 길거나 짧거나 그 자연인이 그 자연인이며, 실제로도 재탕에 삼탕일텐데도 채널을 돌려가며 찾아볼 일인가 싶었단다. 혹시 아버지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잠시 동안이지만 심각하게 고민했더란다.


60대 이상 은퇴한 남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방송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라는 우스게소리를 언젠가 다른 지인으로부터도 들은 적 있다. 그 때도 이번에도 나는 말하지 못했다.


나도 좋아한다!
 "나는 자연인이다"

감히 빗댈 것은 아니지만 커밍아웃하는 누군가의 심정의 발치 쯔음을 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연인이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커밍아웃까지 거론할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죄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 솔직하게 말하기는 좀 그렇다. 더욱이 진짜 나를 모르는, 그래서 나의 페르소나를 나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는.


꽤 어려서부터 나는 사람들이 싫었다. 극히 제한적인 몇몇을 제외하고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어떤 친구도, 엄마도, 가족도 편치 않았지만, 내가 가는 곳곳마다 어디에나 사람은 있었다.


미취학꼬맹이 시절, 유치원 대신 다녔던 웅변학원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에피소드가 적극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 연사 외칩니다아아!" 하고 웅변발표를 했던 어떤 순간에 우연히 눈 맞주친 누군가의 어이없어 하는 눈빛이 마음에 남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우리 엄마는 첫째 아들에 비해 너무 소심하고 샤이한 둘째 딸을 씩씩하고 씩씩한 아이로 키우고자 웅변학원에 보내셨다. 하지만 인생은 (대체로)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 웅변학원을 2년 정도 다녔던 것 같은데, 그 동안 웅변 발표는 몇 번이나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웅변발표 시간의 공포스러움만은 생생히 남아 있다. 나는 웅변발표시간이 다가올수록 소심해졌다. 자연히 웅변발표시간 횟수가 많아질수록 더 소심해졌다. 웅변 무대에서 오줌을 싼 일은 우리 집에서 "안" 비밀이다. 샤이한 아이는 더 샤이해지다 못해 겁쟁이가 되었다. 엄마에게는 (도대체 왜?) 미스테리였으리라.


웅변으로 나아질 문제가 아니었고, 오히려 웅변으로 악화될 수도 있었음을 알았던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이 꽤 어른다워졌을 무렵이었다.


 꽤 어른다워졌을 무렵에 나는,
 '이런 나라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소심하고 샤이한 나를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웅변 무대에 올려 놓을 필요가 없고, 사람들과의 접촉이 유쾌하지 않은 이런 나로 살아도 괜찮다 - (더 정확히 말하면) 어쩔 수 없이 이런 나로 살아야 한다 - 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때 나는 '진짜 어른'다워졌다. 이런 나를 인정한 순간, 그런 나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소심하고 샤이한 , 그건 그냥 그런 거라고. 부족한 것도 못난 것도 아니다. 이건 그냥 지구 잘못이야. 머스크가 화성 식민지 건설할 때까지 살 수 있을까?


아무래도 지구는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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