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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Aug 02. 2022

부족한 ‘나’라도 견디겠다는 결심

[나의 인지행동치료 노트]

얼마 전 어떤 남자에게 정성 들여 고백했다가 까였다. (좀 어른답게 표현하면 어떻겠니?)

다시...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다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내가 먼저 고백했을 때의 연애 성공률이  괜찮았다근자감이 있었고,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성격도 한몫했겠고, 게다가 의외로 연애에서 소극적인 편인 남자들이 많다는 도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거절당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똑같지만,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역할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오히려 남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지도


암튼 그래서, 이번에도 내 마음을 받아줄 거라 거의 생각했다. 적어도 성공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거절의 두려움을 이겨낼 정도로 단서가 많았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 시간 가는  모르게 대화가  통하고 그래서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사람이 나에게 하는 배려심 있고 매너 있는 태도는 나에 대한 이성적인 호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과 행동,  외모에 대해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러운 누군가를 대할   법한 표현들을 사용했다. 관계 발전에 대해서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라 생각했는데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거절을 당하고 나니, 아직은 괜찮은 나이라고 생각했던  나이 - 사십 -가 마음에 걸리고… 나이에 비해서는 어려 보이는  얼굴에 생긴, 없던 주름도 걸린다. 그런 이유가 자꾸만 떠오른다. 내가 이제  이상 여성적인 매력이 없나.  엉덩이 너무 처졌나. 얼굴 탄력이 너무 떨어졌나. 그런 생각에 괴로워하며  몸을 벗겨놓고 구석구석 한참을 뜯어보기도 했다.


올 초에 사십이라는 나이를 받아들이면서 정신승리를 해냈다. 아홉수보다는 꽉 찬 듯한 숫자 0이 낫고, 새로이 시작하는 느낌의 40이 낫다고. 이제까지 잘 살아왔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는다고 달라진 게 없듯이 나이가 사십이 된다고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고.


하지만 처진 엉덩이와 얼굴의 주름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처진 엉덩이와 얼굴 주름도 오늘에서야 갑자기 생긴 건 아닐 텐데, 이게 엄청 크게 보이는 오늘이다. (리프팅 시술만이 답인가?) 어쩐지 내가 늙고 미워 보인다.


그러다 문득, 내 나이와 나를 ‘착붙’해서 생각하는 나의 그 생각부터 오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지행동치료 이론을 알고부터 생긴 버릇이다. 인지행동치료 이론을 이렇게 얕게 내 일상, 내 삶 구석구석에서 들먹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뭐 어떤가. 내가 의사도, 심리치료사도 아니고, 나는 그저 내 삶 하나만이라도 잘 지키고 잘 살아내려는 사람일 뿐인데…


인간을 정의하는 건 나이가 전부가 아니다. 나를 구성하는 건 내 나이만이 아니다. 내 성품, 직업, 경제력, 외모와 나이도 물론 포함. 나이가 들면서 내 외모로서의 가치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내 성품과 직업, 경제력으로 그 떨어진 부분은 메꿀 수도 있다. 인생은 그런 것 같다. 나이듦이란 그런 것 같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 인생. 


부족해도 못나도 내 얼굴이고, 내 얼굴은 열심히 살아온 내 세월이다. 리프팅 시술을 해도 되지만, 단지 내 얼굴 주름 때문에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남자는 안 보면 된다. (사실 오늘 그 남자가 외모나 나이 때문에 싫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못난 나를 견디어주는 마음은
나만이 가진 마음이다.


그 남자의 진짜 거절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외모 때문이라면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이고, 내 외모 때문이 아니라면 마음이 다를 수도 있었고, 마음이 같아도 입장이 달라서 일수 있다. 내가 거절당한 이유를 외모 때문?이라 생각한 건 순전히 나의 추측일 뿐. 내 마음속의 나이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걱정이 그런 생각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우울하고 씁쓸한 기분이 말끔하게 개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속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을 바꾸면 기분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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