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지행동치료 노트]
얼마 전 어떤 남자에게 정성 들여 고백했다가 까였다. (좀 어른답게 표현하면 어떻겠니?)
다시...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다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먼저 고백했을 때의 연애 성공률이 꽤 괜찮았다는 근자감이 있었고, 좋아하는 마음을 잘 감추지 못하는 내 성격도 한몫했겠고, 게다가 의외로 연애에서 소극적인 편인 남자들이 많다는 점도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거절당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건 똑같지만,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역할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오히려 남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지도…
암튼 그래서, 이번에도 내 마음을 받아줄 거라 거의 생각했다. 적어도 성공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거절의 두려움을 이겨낼 정도로 단서가 많았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대화가 잘 통하고 그래서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배려심 있고 매너 있는 태도는 나에 대한 이성적인 호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말과 행동, 내 외모에 대해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러운 누군가를 대할 때 할 법한 표현들을 사용했다. 관계 발전에 대해서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거절을 당하고 나니, 아직은 괜찮은 나이라고 생각했던 내 나이 - 사십 -가 마음에 걸리고… 나이에 비해서는 어려 보이는 내 얼굴에 생긴, 없던 주름도 걸린다. 그런 이유가 자꾸만 떠오른다. 내가 이제 더 이상 여성적인 매력이 없나. 내 엉덩이 너무 처졌나. 얼굴 탄력이 너무 떨어졌나. 그런 생각에 괴로워하며 내 몸을 벗겨놓고 구석구석 한참을 뜯어보기도 했다.
올 초에 사십이라는 나이를 받아들이면서 정신승리를 해냈다. 아홉수보다는 꽉 찬 듯한 숫자 0이 낫고, 새로이 시작하는 느낌의 40이 낫다고. 이제까지 잘 살아왔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는다고 달라진 게 없듯이 나이가 사십이 된다고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고.
하지만 처진 엉덩이와 얼굴의 주름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처진 엉덩이와 얼굴 주름도 오늘에서야 갑자기 생긴 건 아닐 텐데, 이게 엄청 크게 보이는 오늘이다. (리프팅 시술만이 답인가?) 어쩐지 내가 늙고 미워 보인다.
그러다 문득, 내 나이와 나를 ‘착붙’해서 생각하는 나의 그 생각부터 오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지행동치료 이론을 알고부터 생긴 버릇이다. 인지행동치료 이론을 이렇게 얕게 내 일상, 내 삶 구석구석에서 들먹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뭐 어떤가. 내가 의사도, 심리치료사도 아니고, 나는 그저 내 삶 하나만이라도 잘 지키고 잘 살아내려는 사람일 뿐인데…
인간을 정의하는 건 나이가 전부가 아니다. 나를 구성하는 건 내 나이만이 아니다. 내 성품, 직업, 경제력, 외모와 나이도 물론 포함. 나이가 들면서 내 외모로서의 가치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내 성품과 직업, 경제력으로 그 떨어진 부분은 메꿀 수도 있다. 인생은 그런 것 같다. 나이듦이란 그런 것 같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 인생.
부족해도 못나도 내 얼굴이고, 내 얼굴은 열심히 살아온 내 세월이다. 리프팅 시술을 해도 되지만, 단지 내 얼굴 주름 때문에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남자는 안 보면 된다. (사실 오늘 그 남자가 외모나 나이 때문에 싫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못난 나를 견디어주는 마음은
나만이 가진 마음이다.
그 남자의 진짜 거절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외모 때문이라면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이고, 내 외모 때문이 아니라면 마음이 다를 수도 있었고, 마음이 같아도 입장이 달라서 일수 있다. 내가 거절당한 이유를 외모 때문?이라 생각한 건 순전히 나의 추측일 뿐. 내 마음속의 나이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걱정이 그런 생각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우울하고 씁쓸한 기분이 말끔하게 개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속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을 바꾸면 기분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