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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적 순환이란 무엇일까요?

[지식을 위한 변론_철학]

by 평범한지혜
철학이 법학과 관련이 있을까요?

샘물... (으응?)

물리학이 법학과 그다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철학도 법학과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철학은 법학적 상상력의 중요한 근원 중 하나입니다.

법학적 아이디어를 철학의 샘물에서 길러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학의 샘물 한곳을 방문해 보겠습니다.

자, 따라오세요.



철학 중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해석학자인 슐라이에르마허(Shleiermacher)는 무엇인가를 이해(understand, verstehen) 하려고 할 때에는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해석학적 순환, 어려워 보이지만, 이해하고 나면 어려운 얘기는 아닙니다(아니, 사실 여전히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부분은 전체(맥락)에 의해서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이므로 전체(맥락)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한편 전체(맥락)은 바로 각각의 부분을 이해하여야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분과 전체가 이렇게 '순환'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순환을 따라가야 언젠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전히 쉽지 않죠?)


책을 읽을 때에도 전체적인 내용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어야 일부분을 읽어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으려면 책의 일부분을 조금씩 읽어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부분과 전체를 순환적으로 여러 번 읽고 생각하고 해야 비로소 책의 전체와 일부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책을 제대로, 빠르게 읽는 비법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해되었지요? (아직 이해가 안 되도 좌절하지 마세요. 그럴 수도 있어요. >_<)



[뜬금 있는 한 컷: 제가 아날로그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답: 지금 몇 시인지를 하루 전체의 시간에서 보여 줍니다.



슐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적 순환이 법학에
어떠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까요?



계약서에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갑이 을에게 이달 말일까지 물품을 공급하지 못하면 갑은 을에게 위약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갑이 그만, 이달 말일까지 물품을 공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갑은 영락없이 을에게 1억 원을 지급해야 할까요?


법학의 많은 이론들이 손을 들고 변론을 하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자, 법학은 잠시 잊어 버리고, 철학자(해석학자) 슐라이에르마허(Shleiermacher)에게 변론의 기회를 줘 보겠습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이렇게 변론할 것 같습니다:


부분은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계약서의 위약금 조항(=부분)의 해석은 계약서의 다른 내용 모두(=전체)에 비추어 왜 그러한 위약금 조항이 도입되었는지부터 따져보아야 합니다.
갑이 물품공급으로 얻게 될 수익이 그다지 크지 않거나 물품이 이달 말일 제때 공급되지 않아서 을이 입었던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다면(계약서 전체), 갑이 계약을 위반하였다는 판단(계약서 일부)도 갑에게 비교적 너그럽게 해야 합니다.
갑이 이달 말일 제때 공급을 못할만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지도 너그럽게 살펴봐야 하고, 1억 원이 지나치고 불공정하면 법원이 깍아 주어야 합니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위와 같은 변론, 해석학적 순환 이론에 기초한 변론은 합리적입니다. 손을 들고 변론하겠다고 아우성이었던 법학의 많은 이론들로 마침 이와 유사합니다. 철학의 샘물에서 법학적 상상력이 흘러 나온 것 같습니다.



[뜬금 있는 한 컷: 철학의 샘물도 이렇게 판매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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