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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세(Windfall Tax)"와 무지의 장막

[지식을 위한 변론_정치]

by 평범한지혜

최근 유럽 전역에서 에너지 관련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한다는 기사가 많습니다.


영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 등이 횡재세를 도입했고, 독일,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전역의 국가들이 유사한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이미 25%의 횡재세를 거두어들였는데, 최근 35~45% 수준까지 인상하고 부과 기간을 2028년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스페인은 2023년부터 2년간 횡재세로 70억 유로를 거두어들일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말도 어딘지 재미있습니다. 횡재세.

영어로는 Windfall Tax.

Windfall : 1. 우발적인 소득, 뜻밖의 횡재.

2. 바람에 떨어진 과실, 특히 낙과.


그러니 횡재세는 우발적인 소득에 붙이는 세금이겠지요.

말만 들어도 어딘가 통쾌한 건 왜일까요? (티가 났나요? 살면서 횡재 맞아 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코로나19나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수익은 천문학적 수준으로 급증했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격에 에너지를 사용할 수밖에 었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횡재세를 거두어들이는 건 옳은 일일까요?


논란은 있습니다. 에너지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자리도 줄어들고,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지요. (왜 나만 갖고 그래?)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정답이 있습니다.


그 답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71년

롤즈(Rawls)라는 철학자가 출간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라는 책 속에 있습니다.

그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라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기 직전의 상태에 있습니다. 당신과 이 세상 사이에는 커다란 장막(veil)이 쳐져 있습니다.

무지의 장막 뒤에 있는 부엉이 친구


이 커다란 장막으로 인해 당신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떤 시대, 인종, 민족, 계급에 속할지를 모르며, 남자가 될지 여자가 될지도 모르며, 장애를 갖게 될지 건강할지도 모릅니다.


그 상황에서 당신이
곧 태어날 세상의 정책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만드시겠습니까?


마음대로 만들어 보라고 해도 걱정은 많을 겁니다.

어떻게 설계하더라도 그것이 유리할지 또는 불리할지는 완전히 ‘우연적인 사정’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그나마 현명한 선택일까요?

‘우연적 사정’에 의해 행운과 불행이 크게 좌우되지 않는 정책을 만드는 겁니다.

우연적 사정에 의한 불행은 사회가 다 함께 감당하는 제도를 만드는 겁니다.


횡재세로 거두어들인 수익은
어디에 쓰여야 할까요?


스페인은 거둬들인 횡재세를 공공주택 건설, 무임승차권 발급, 장학금 지급 등에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U는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횡재세를 부과해서 이들이 얻은 초과이윤은 가장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횡재세를 거두어들여 이렇게만 사용한다면, 횡재세는 정당한 것이겠지요. (R)


우연적 사정에 의한 행운(=전쟁으로 얻은 에너지 업계의 천문학적 수익)을
사회가 거두어들여서(=횡재세 부과)
우연적 사정에 의한 불행(=고가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에 대해
보상해 주는 제도


[뜬금없는 한컷 : 자세히 보아야 횡재다]

드디어 저도… 횡재 발견? (어디?!? 어디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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