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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2)]명예훼손 체크리스트

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

by 평범한지혜

누군가 자신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때, 그 말이 기분 나쁘고 속상하다는 것만으로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내가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명예훼손으로 그 사람을 고소하기 전에, 또는 명예훼손을 저지르기 전에 그런 표현이 명예훼손인지 아닌지 체크해 보세요. 제가 체크 리스트를 한 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용용이라는 직원이
여러 직원들이 듣는 자리에서 나에 대해 회삿돈으로
알사탕 100개를 사 먹었다고 말했다고 합시다.


내가 용용이 입장이라면 기분이 어떨까요? 갑자기 벌컥 화가 나겠지요?

자, 이 기분 그대로 들고, 아래의 체크리스트를 적용해 보세요.



1.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가? VS 내게만 말하는가?


가끔은 이런 일로 상대방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다고 묻기도 합니다.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상대방이 내게 '회삿돈을 횡령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감과 명예감이 높은 사람들은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는 법률이 말하는 명예훼손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회삿돈을 횡령했다'라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하고 다녀야 비로소 법률이 말하는 명예훼손에 해당됩니다.

나만 있는 가운데 나에게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명예훼손죄가 안 됩니다.



2. 진위가 확인되는가? VS 의견일 뿐인가?


말이란 같은 표현도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


도둑(절도)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말합니다. 길을 가다 누군가 도망가고 누군가 뒤따라가며 '도둑놈!'이라고 외친다면 이것은 그가 물건을 훔쳤다는 표현일 겁니다.

물건을 훔쳤는지 진위(진실 여부)를 가릴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이런 말은 명예훼손의 문제가 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많은 커플이 있을 때 나이 많은 사람을 보고 '도둑놈'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 도둑이란 물건을 훔쳤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을 훔쳤는지 안 훔쳤는지의 진위(진실 여부)를 가릴 표현이 아니지요. 이런 말은 명예훼손의 문제가 아닙니다(모욕죄의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


자, 누가 나에 대해서, '회삿돈을 횡령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요? 예. 진위를 가릴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명예훼손의 문제가 되는 말입니다.


3. 그 말이 진실인가? VS 거짓인가?

우리나라는 진실을 얘기해도 거짓을 얘기해도 모두 명예훼손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정말로 회삿돈을 횡령한 사람에게 회삿돈을 횡령했다고 진실을 말한 사람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우리 법률은 거짓을 얘기하면(진위를 가려보았더니 거짓말이었다면) 엄하게 처벌합니다. 그러니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따져 보기는 해야 합니다. 회삿돈을 횡령하지 않았는데 회삿돈을 횡령하였다고 거짓말을 하면 훨씬 엄하게 처벌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따져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아주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만약 명예훼손적인 발언이라도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얘기한 것이라면 그 말이 혹시 공공의 이익에 관련된 얘기라면 법률은 이런 발언을 또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얘기가 진실한 사실이라면, 그것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4. 그 말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는가?


마지막으로 명예훼손적 발언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법률은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호하기 위해서 공공의 이익의 개념을 매우 넓게 이해합니다. 대체로 공공의 관심사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며 대체로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된다고 봅니다.

회삿돈이 횡령되었다는 사실도 경우에 따라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일 수 있습니다. 회삿돈은 모두에게 사용되어어야 할 공금인데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 이것을 횡령하고 있다면 이를 알려서 횡령을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횡령범으로 처벌까지 된 사람에 대해 그가 횡령범이었다는 전과를 알리는 경우라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명예훼손적인 발언을 할 때에는 공공의 관심이 어떤 일에 대해서 진실한 사실이라고 알고 명예훼손적인 발언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잘못 안 것었다면(허위의 사실인데 진실한 사실로 잘못 알고 발언) 어떻게 될까요? 명예훼손죄가 성립할까요? 어떤 기준이 있을까요? 이 이야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지겠군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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