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대재해처벌법위반 1호 사건으로 대표이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확정된 판결이 있었지요.
대표이사에 대한 형사처벌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이었습니다.
물론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1호 민사판결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문제겠지요.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손해배상의 책임) ①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 법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해당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이 중대재해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 대하여 그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진다. 다만, 법인 또는 기관이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법원은 제1항의 배상액을 정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고려하여야 한다.
1.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정도
2. 이 법에서 정한 의무 위반행위의 종류 및 내용
3. 이 법에서 정한 의무 위반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의 규모
4. 이 법에서 정한 의무 위반행위로 인하여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취득한 경제적 이익
5. 이 법에서 정한 의무 위반행위의 기간·횟수 등
6.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의 재산상태
7.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의 피해 구제 및 재발방지 노력의 정도
우리나라에는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최초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 있었고, 하도급법 위반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사례는 이미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저작권 관련, 소비자 보호 관련 몇 가지 개별법에 도입되어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뭘까요?
실제로 발생한 손해만큼만 배상하는 것을 "전보적 손해배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원칙적인 모습의 손해배상입니다. 손해배상의 대원칙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전보 = 부족한 것을 메꾸어 채움. 유의어) 보충, 충당
누군가 나에게 불법한 행위를 나면 나의 삶에 마이너스가 생길 수 있지요. 아파서 입원해서 일을 못 나갈 수도 있고, 치료비가 들 수도 있습니다. 손해배상은 딱 그 마이너스만큼만 채워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법은 전통적으로 전보적 손해배상제도만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원칙적으로는 전보적 손해배상제도만 인정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변호사님이 잘 설명해 주고 있죠?
전보적 손해배상은 정명석 변호사가 화이트보드에 적은 이 항목들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해서 이만큼만 인정해 줍니다.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은,
전보적 손해배상 + α 를 인정합니다.
실제 발생한 손해(전보적 손해)보다 몇 배의 금액(징벌적 손해)을 배상하라고 합니다.
주로 영국, 미국과 같은 영미법계 국가들이 가진 제도입니다.
아주 부도덕하거나 아주 악의적인 행위로 누군가의 삶에 마이너스가 생긴 경우에는, 그 아주 부도덕하거나 아주 악의적인 행위에 대한 대가를 가혹하게 치르게 하는 것이지요.
미국은 과거에 전보적 손해배상의 14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기업이 파산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지요. 손해배상액을 판사가 아닌 배심원들이 결정하는 경우 이런 일이 더 많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손해배상제도의 본질과 근본적으로 충돌합니다.
그럼 손해배상제도의 본질이 뭘까요?
누군가의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합시다.
불법행위를 저지름으로써 플러스가 발생한 쪽에게서 플러스를 떼어내어 그 불법행위로 인해 마이너스가 발생한 쪽에게 마이너스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불법행위로 인해 살짝 기울어진 시소의 균형을 맞추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불법행위, 그만큼의 책임을 그 자신에게 지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해배상제도의 본질은 " 균형과 책임 "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은 마이너스가 발생한 쪽에게는 마이너스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플러스가 생기고, 플러스가 발생한 쪽에게는 자신의 불법행위를 훨씬 뛰어넘는 책임을 지우는 결과가 됩니다.
살짝만 기울었던 시소가 아예 반대로 쿵 떨어져 버리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게다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별도로 하지요. 사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적인 손해배상에 형사처벌을 덧붙인 제도라는 점에서 형사처벌을 이중으로 한다고 생각될 수도 있어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오히려 최근 이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오히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 위헌이라는 논의가 나오고 액수 또는 배율을 제한하는 판례가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어요.
'징벌'과 '손해배상'.
이런 점에서 저에게는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균형을 깨뜨리고 과도한 책임을 묻는 제도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속 깊은 곳 리걸 마인드를 끌어내어 보세요. 저랑 같이 어색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