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시비걸릴 일 생깁니다. 나이가 좀 들면, 길가다 부딪혀도 혹은 운전하다 끼어드는 차가 있어도 내 시간이 아깝고 내 인생이 소중해서 그냥 지나갑니다. 하지만 젊을 때는 그렇지 않지요. 체력에 자신도 있고 혈기가 왕성하니까요. 별 것 아닌 일로 시비가 붙습니다.
“지금 협박하시는 거예요?”
다투다가 상대방이 이런 말을 했다면, 내가 한 어떤 말에 상대방이 겁을 먹었다는 뜻이지요.
(물론 겁을 안 먹었으면서도 겁먹은 척할 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겁먹은 척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 종종 있지요.)
협박.
법률용어치고는 꽤 일상적인 용어입니다. 그런 만큼 내 생각과는 다르게 협박죄가 범죄로 인정 안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협박죄는 형법으로 처벌됩니다.
형법
제283조(협박, 존속협박)
① 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형법에는 "협박"이라고만 규정되어 있지요. 이럴 때 법원이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정합니다.
법원은 상대방이 공포심을 느낄만한 구체적인 해악을 말과 행동으로 하는 것으로 협박이라고 인정합니다. 욕설이나 폭언, 분노의 표현으로만 보이는 경우 협박이 아니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말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한 상황까지 종합해서 판단합니다.
고지하는 해악의 내용이 그 경위, 행위 당시의 주위 상황, 행위자의 성향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게 하기에 족하면 되고, 상대방이 현실로 공포심을 일으킬 것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다만 고지하는 해악의 내용이 경미하여 상대방이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인 경우에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 2005. 3. 25. 2004도8984
예를 들어 볼까요?
1. 길에서 주차 시비를 하다 화가 나서 "죽여버린다!"라고 말한 경우, 협박이 될까요?
단순한 분노의 표현으로 볼 여지가 큽니다.
말로만 과격한 표현을 한 것으로 보여서 협박죄가 성립되기 어려울 것 같아요.
2. 그런데 만약 트렁크에서 칼을 꺼내어 들고 가까이 다가가며 "죽여버린다!"라고 말한 경우는 어떨까요?
같은 말을 했지만 칼을 들고 다가가는 행동을 보였다면 실제로 칼로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지요? 협박죄가 성립될 것 같아요.
3. 그러면 이 경우는 어떨까요? 트렁크에서 꺼낸 칼을 자신의 배에 대고 "죽어버린다!"라고 말한 경우는 어떨까요?
자해하겠다고 고지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는 협박이 안 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요.
판례는 자해의 경우에 협박을 인정하지 않은 사건도 있고, 자해까지 해서 피를 보인 경우에는 구체적인 해악 고지라고 보아서 협박으로 인정한 사건도 있어요.
눈앞에서 나 때문에 누군가가 자살이나 자해를 하면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겠지요.
그런데 협박은 협박죄 자체로 처벌되는 경우가 문제가 아닙니다.
협박은 다른 범죄의 수단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협박을 해서 남의 돈을 빼앗고, 협박해서 강간을 하거나 추행을 하지요. 이 경우에는 협박죄 처벌로 안 끝나지요. 협박으로 스토킹 범죄가 성립할 수도 있고, 자신을 신고한 사람에 대해 보복할 목적으로 협박하는 경우는 상당히 무겁게 처벌될 수 있습니다.
협박죄는 합의해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처벌받지 않고요.
협박죄로 고소 당하는 경우에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보다는 변호사 선임할 돈을 피해자에게 주고 고소 취하를 부탁하는 게 훨씬 좋은 방법입니다.
그럼 간단히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을 겁니다. 소위 전과라고 부르는 처벌기록이 아니니까 장래에 끼칠 영향이 거의 없지요.
물론 협박으로 더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피해자와 합의가 훨씬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합의하더라도 불기소처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