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되었던 해병대 장병 한 분이 급류에 떠내려가 사망하고 말았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젊은이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수해나 폭설, 폭우, 건물 붕괴 등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늘 대민을 지원하는 군인들의 기사가 따라 나오지요. 지난 몇 년간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로 인한 위기 상황에도 공항, 항만, 병원 등에서 군인들이 시민들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군필자들에게 “대민지원”이라고 하면 한여름 땡볕에서 모심기 같은 농촌 일손 보태기에 동원되었던 기억이 소환됩니다.
대부분 유쾌하게 기억하지는 않을 거예요. 치킨 몇 마리에 막걸리 몇 병 얻어 마시고 하루 종일 익숙하지도 않은 모심기를 했을 테니까요. 물론 노령인구뿐인 농촌의 일손을 젊은 군인들이 보태어 준다는 아름다운 기사로 지역신문에 보도되었겠지요.
군인의 대민지원.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국가가 하는 모든 일에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고, 군 지휘관이든 대통령이든 그 법적 근거에 맞는 지시를 하여야 합니다.
그 지시에 따라는 사람은 법에 맞지 않는 지시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현실적으로 거부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요).
이 사건과 같이 대민지원 지시에 따르다가 군인이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는 어떤가요?
국가유공자 법 또는 공무원법 등에 의해 공무상 재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려면 대민지원 활동의 법적 근거와 그 활동의 범위 등을 따지게 됩니다.
대민지원을 지시한 사람은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업무상과실의 판단에는 대민지원이 법적 근거에 맞게 판단되었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대민지원에 대한 전혀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9조(동원명령 등) 중앙대책본부장과 시장ㆍ군수ㆍ구청장(시ㆍ군ㆍ구대책본부가 운영되는 경우에는 해당 본부장을 말한다. 이하 제40조부터 제45조까지에서 같다)은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면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
1. 「민방위기본법」 제26조에 따른 민방위대의 동원
2. 응급조치를 위하여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에 대한 관계 직원의 출동 또는 재난관리자원 및 제34조제2항에 따라 지정된 장비ㆍ시설 및 인력의 동원 등 필요한 조치의 요청
3. 동원 가능한 장비와 인력 등이 부족한 경우에는 국방부장관에 대한 군부대의 지원 요청
제1항에 따라 필요한 조치의 요청을 받은 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
행정기관장이 국방부장관에게 요청하고, 국방부장관은 거부할 수 없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동원 가능한 장비와 인력이 부족한 경우”에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뿐입니다. 이는 구체적인 요건이 아닙니다. 행정기관장에게 그 판단에 폭넓은 재량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부족한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세부적인 요건이 없어요.
긴급하게 발생하는 재난상황을 고려해서 기관장에게 넓은 권한을 준 것일까요?
재난이 대체로 긴급하게 발생한다는 점에서 평소 국회와 정부가 구체적인 요건을 법에 규정해서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 상태라면 재난 상황마다 기관장 판단에 좌우됩니다. 그럼 각 지역 자체단체장과 군부대장의 협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지역마다 자치단체장과 군부대장이 사이가 좋으면 대민지원 범위를 넓게 판단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면 엄격하게 판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과거 2016년 철도 파업 당시에 군 인력을 투입한 사례도 있었고,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에 군 인력을 투입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는 군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따릅니다. 군의 역할은 국가 안보이지요. 국가 내부에서의 국민의 안전도 국가 안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문제의 본질을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군인들은 값싼 노동력 혹은 공짜로 부리는 노동력 정도로 생각하는 것에 있는게 아닐까요? (너무 과격한 생각인가요?)
농촌일손 보태기는 국민의 안전일까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