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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Aug 20. 2020

좋은 어른의 존재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갔다가 스님을 뵈었다.

우리 엄마가 다니던 절의 주지스님이셨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매일 절에 가던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교회나 성당과 달리 절은 중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곳은 아니었기에, 나도 주말에 엄마 따라오면 돈가스 사준다는 말에 몇 번 따라나선 적이 있을 뿐이었다. 주지스님도 그렇게 한 두 번 인사를 드리는 정도로만 안면이 있었다. 


고 1 겨울방학 즈음,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 증상 때문에 엄마에게 신경정신과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병원에 갈 때 가더라도 가기 전에 스님에게 가서 상담을 받아 보자고 하셨고, 그때 스님을 뵙게 되었다.


첫 만남이 기억난다.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스님 얼굴을 보고, 몇 마디 말을 나누지도 않았는데, 나는 목놓아 울고 말았다. 한참을 울고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목놓아 울어본 것이 너무 후련했던 기억은 또렷이 남아있다.


그 이후 스님은 줄곧 내게 “좋은 어른”이 되어 주셨다. 스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곧 내게 삶의 질서가 되었고, 스님의 행동 하나하나는 내게 본받을만한 어른의 삶의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스님과 서른여덟 살이 된 내가 오랜만에 긴 대화를 하게 되었다. 긴 대화 끝에 나는 더 이상 스님을 처음 뵈었던 열일곱 살의 아이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분에게 기댈 것이 없었다.

나는 나만의 질서를 만들었고 꽤 괜찮은 삶의 태도를 지닌 어른이 되었다.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른여덟 살이 된 나는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이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

좋은 어른의 존재가 절실함을 깨닫는다.

그 좋은 어른이 부모인 것도 좋겠지만,

운이 나빠 좋은 부모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을지라도 한 사람의 좋은 어른이라도 아이 곁에 있다면,

아이는 잘 성장할 수 있다.


스님께 이제는 ‘혼자서도 잘해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내가 기특하고, 내 곁에서 좋은 어른이셨던 스님께도 감사하다.


나도 이제 누군가의 좋은 어른이 되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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