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범한지혜 Aug 16. 2020

나를 부양하는 즐거움

시골 근처에는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농사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다이소에서 산 방울토마토 키우기 키트였다. 손바닥 만한 플라스틱 화분에 토마토 씨앗 4~5개 정도를 심었다. 씨앗이 정말 작았는데, 3개의 싹이 텄다. 떡잎이 두 개 나오고, 세 개째 본잎이 나오고 나서 모종 하나만 남겨 두고 나머지 두 개는 2리터 짜리 생수통을 잘라 거기에 옮겨 심었다. 토마토 화분 세 개가 생겼다. 매일 이 녀석이 자라는 걸 지켜 보았다. 매일매일 변화하는 무언가를 지켜보는 건 정말 건강한 일이다. 특별한 변화 없는 하루하루에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변화 화였다. 

  

중학교 때 부모님과 함께 아파트 근처 한 평 정도 땅에 텃밭을 했었다. 그 시절이 우리 집이 어려워지기 직전 평화롭던 시간이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농사가 좋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이 나는 정말 좋았다. 지금은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꽃과 채소를 키운다. 베란다 텃밭이지만, 텃밭을 살펴 보고 있으면 평화롭다.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학교 마치고 엄마, 아빠와 함께 텃밭 채소에 물을 주고, 저녁으로 먹을 채소를 따왔다. 우리가 기르고 따온 채소를 함께 씻고 별일 없이 저녁을 먹는 일상이 좋았다.    


이제 나는 퇴근 후 나를 위해 정성스레 밥상을 차린다. 그 날 그 날 내 텃밭에서 자란 채소의 여린 잎을 살랑살랑 뜯어다가 겉절이도 하고 찌개도 끓인다. 퇴근하자 마자 텃밭을 들여다 본다. 텃밭 상태를 보면서 저녁 메뉴를 정한다. 어제 봤던 식물이 오늘 하루 동안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본다. 잎사귀 하나가 더 나왔는지, 방울이 하나가 더 열렸는지. 사진으로 찍어 두는 건 버릇이 안 되서 못하지만, 내 눈은 다 기억한다. 


혼자 밥 먹으면 밥맛이 없다는 사람은 누굴까. 텃밭에서 기르고 거둔 채소로 상을 차린다. 

된장찌개의 간도 딱 내 입에 맞게,

겉절이 새콤한 정도도 딱 내 입맛대로.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더라.



어느 맛집의 음식보다

내 집 거실에 앉은뱅이 밥상을 놓고 퍼질러 앉아

낮동안 입고 있던 사회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거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먹는 나만의 밥상이 

나는 가장 좋더라.



혼자 사는 여자가 요리를 잘한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파스타나 샌드위치 같은 음식이 아니라, 엄마가 해주는 집밥의 범주에 속하는 찌개나 밑반찬을 잘한다고 하면 더 놀란다. 그 뒤에 따라 오는 말이 있다. 물론 그 말을 입밖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차마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그런데 왜 아직 혼자세요?” 라는 질문이 읽힌다.


그런 때에 대답할 말은 준비해두고 있다. “저는 혼자서도 잘 해먹고 살아서요.”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생각하면 생각이 많아져서, 실제로 이 말을 내뱉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나는 진심이다. 혼자서도 잘 해먹고 잘 산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누구 도움 없이 잘 해먹고 잘 하고 산다. 참 건강하고 씩씩하다. 특히 나는 내가 나를 이만큼이나 잘 부양하고 살 줄 몰랐다.


방울토마토 키트를 사다 심었는데, 방울토마토가 이렇게 주렁주렁 영글게 될 줄 몰랐다. 정말 돈 이천 원 버리는 셈 치고 사다 심었는데, 의외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손으로 나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있다는 사실에 기특함을 느낀다. 

나 자신과의 지금 관계에 매우 만족한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다.


야근 없는 오늘은,

브루니 여사의 You belong to me로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잘 익은 토마토와 바질잎을 똑똑 따 넣어 파스타를 해 먹어야지.

집에 돌아와 수확 하고 맛을 보니, 시장에서 파는 토마토보다 알이 너무 적고, 맛이 아주 좋지는 않다. 별로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지도 않은 싱겁싱겁한 맛이다.


그냥 먹기에는 별로지만, 양념을 가미해서 파스타를 하면 괜찮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결혼해라, 또 잔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