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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Aug 29. 2020

부캐의 목적

매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전투복을 갈아입고 전투화를 신는다.

사복을 벗고 전투복을 입은 채 거울 앞에 서면,

나는 군법무관 소령 누구누구가 된다.


원래의 나에서 다른 캐릭터를 입는다.

심지어 이 역할을 수행할 때는 성격도 달라진다.

부대에 출근을 하면 마치 가상세계에 로그인 하는 것 같다.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수트를 걸치면

수퍼히어로 아이언맨이 되고, 본래의 자기 자신보다 아이언맨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군인이 된지 9년. 이제는 내가 원래의 나인지,

거울 앞에 선 이 군인이 나인지 싶다. 이제는 이 군인의 모습을 빼면 내가 무엇이 얼마나 남을까 싶다.

그럴듯한 나의 “부캐”가 탄생한 기분이다.


요즘 ‘부캐’라는 말이 유행이다.

게임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쓰는 걸 봤는데,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이

국민엠씨라는 캐릭터에 안주하지 않고, 라면집 사장, 하프 연주자, 트로트 가수에 도전하면서 단순한

도전 정도가 아니라 그 캐릭터를 꽤 그럴듯하게 해내는 모습에서 유행하게 된 말이다.


9년 전, 처음 군복을 입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혼란 그 자체였다. 9주 간의 군사훈련을 거치면서 완전한 민간인이었던 나에게 바꿔야 것은

그 정도 기간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혼란이겠지만, 나의 첫 직장은 무려 군대였다.


전투복에 전투화는 9주 훈련기간 동안 조금 익숙해졌지만, 지금도 초임 1년 기간의 사진을 보면 전투복을 입은 모습이 어딘가 어설퍼서 웃음이 난다.

더 혼란이었던 것은 조직문화였다.


조직문화라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달리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군대조직문화를 상징하는 가장 확실한 용어가 “상명하복”이다.

상급자의 명령에 하급자는 복종한다는 뜻.


그래서 상급자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고 열심히

보좌하는 하급자가 인정받는다. 반면 수평적인 사고 방식에 익숙하고 너무 적극적이거나 자기 표현이 뚜렷한 하급자를 상급자들은 어색해한다. 물론 하나의 경향이고,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후자의 캐릭터였고, 이런 성격 덕분에 군법무관이 되는 걸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군법무관이 된 나에게 상명하복은 특히 어려웠다. 왜 상관의 말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지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이 더 좋은 것 같은데, 나의 더 좋은 생각을 말하는 것을 왜 눈치보며 주저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9년이 지난 지금, 상명하복의 문화가 군에서 특히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고,

나보다 경험 많은 상관의 말이 맞는 경우도 많고,

상관의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따른다고 크게 잘못될만큼 틀린 경우도 별로 없으니,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생각도 무조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설령 좋은 생각이라도 상급자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물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변화한 결과이고, 한 때는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많았지만, 이제는 안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나의 부캐는 나를 확장시키고,

나에게 많은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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