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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Aug 28. 2020

90년대생의 가치관

얼마 전 옆 부서 과장들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넷 다 조직에서 중간관리자급이었기 때문에 공통된 고민이 많았다.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입장이라 허심탄회한 분위기에서 오랜만에 편한 대화가 오고 갔다. 

평소에는 아래위 양쪽의 눈치를 다 봐야 하는 가련한 입장이라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없어 이런 때에 할 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넷 모두 80년대생인 우리들의 상급자는 대부분 70년대생이고, 우리들의 하급자는 대부분 90년대생이다. 

얼마 전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어 보았는데 그 책 내용이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개인주의적인 90년대생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점은 공감했다. 이런 분위기는 군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나는 자주 그들의 용기 있는 가치관에 부러움을 느낀다. 

이를테면, 육아휴직 또는 육아시간 제도를 사용하는 데에 별로 주저하거나 미안해하는 태도가 없다. 여군이나 여직원만이 아니라 남군이나 남직원들도 당연하게 그 제도를 활용한다. 


뭐랄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특히 군대는 남성 다수의 조직이기 때문에 다수의 ‘아빠들’이 재직 중이다. 90년대생 아빠인 구성원들 대부분은 육아휴직 또는 육아시간을 사용한다. 심지어 사용하지 않으면 자기 것도 못 찾아먹는 사람처럼 인식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용하라고 있는 제도를 요건에 맞게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이니 당연히 주저하거나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깔끔하게 사용하면 된다. 90년대생은 그렇다. 심지어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다. 과장이 신청이 들어오면 이에 대해 승인하는 절차가 있지만, 딱히 나한테 감사할 일은 아니라 생각하는, 그런 느낌이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80년대생이기 때문일까?)


우리 80년 대생들만 해도 그렇게 눈치를 본다.

상급자의 반응도 살펴야 하고, 제도를 사용하는 다른 사람이 이미 있는지 회사 동향도 살피고,

동료들에게 미움받지 않을까 부서의 분위기도 미리 고민한다.


우리의 상급자인 70년 대생들은 이제 그들의 아이들이 다 중고등학생이어서 이런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

“라테는 말이야. 그런 것도 없었어! 요즘 사람들은 정말 자식 편하게 키우네.” 이런 말을 한다. 그러니 우리와 비교할 필요도 없이 이들의 입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군대에서 육아휴직제도를 남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에 아빠인 내 동료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려는 의사를 상급자에게 내비쳤다가, “진급할 생각이 없나 보네.”라는 말을 듣고 신청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반감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물론 그는 80년대생이다. 그 동료는 근무지 때문에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거의 떨어져 살아왔다. 아이와 공유할 추억도 별로 없고, 그래서인지 아이와 사이가 서먹해 아이가 학교 들어가긴 전에 가까이에서 보살피며 관계를 회복해보고자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했다.


만약 내 동료가 90년대생이었다면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신청을 포기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하나의 사건을 지나치게 일반화해서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90년 대생들의 이러한 태도 덕분에 지금은 전보다는 많은 아빠들이 육아휴직이나 육아시간을 활용해서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80년 대생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70년 대생들은 대부분 아이가 9살 이상으로 자라 그럴 수가 없다.)


이 때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관찰해보면, 이들에게 육아휴직이나 육아시간을 승인하는 80년대생 또는 70년대생인 상급자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아빠들이 육아휴직 신청한다고 해서 진급 운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직 남아 있는 꼰대들이 없지 않기 때문에 ‘거의’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90년 대생들의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는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중간에 끼인 80년대생인 나는, 아직도 상급자의 눈치를 보지만, 그들의 당당한 태도에 부러움을 느끼며, 그 분위기에 슬쩍 숟가락을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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