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 베고니아

제주이도주공 다큐 작업기

by 오씨네

‘연잎 베고니아’

예전에 인터뷰 간 집에서 키우던 식물 이름을 알려주셔서 메모해뒀었다. 잊지 말아야지 했는데 벌써 흐릿하다. 나는 석 달 전 부터 재개발을 앞둔 이도주공 아파트에 거주하는 분들의 인터뷰를 촬영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진행되는 이 거대한 아파트 재개발 속 식물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8년간 암 투병을 하며 이도주공에 정착한 50대 여성의 집에 초대받아 찍었었다. 암과 싸우는 사이 함께 사는 어머니는 중증 장애인이 되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다가도 시선은 이내 추운 집 안 스튜로폼 박스에서 키우는 식물에 가있었다. 그는 키우는 식물들을 자식이라도 되는 듯이 신이 나서 자랑을 했다. 얘는 당근으로 나눔 받은 것을 물꽂이로 번식시켰고, 이 고사리는 오름에 갔다가 캐왔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 노동할 수 없는 환자로 지내면서 거진 10년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2시간도 서있을 수 없는 낮은 체력의 몸은 남았다. 살림을 줄이고 줄이다 도착한 곳이 이도주공 아파트였다. 비록 바닥 보일러는 안되지만 제주도 시내권에 월세 20만 원짜리 집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 물론 병원을 다녀야 해서 외곽으로는 못 나간다. 거주자를 상대로 명도 소송장을 날리는 재개발사는 2월 말까지 전부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겁이 난 사람들은 12월부터 부지런히 나갔다. 다다음 주에 이사 간다던 이 인터뷰이도 떠났다. 가끔 인서트를 찍다 그 집 앞을 지나면 ‘죽은 줄 알고 고춧대로 쓰려고 꽂아둔 나뭇가지에서 잎사귀가 났다며’ 좋아하던 그녀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이도주공 2단지 앞 떡집 사장님은 인터뷰를 갈 때마다 분이 나있다. “여기 처음에 서민 아파트에 5,000만 원, 7,000만 원 겨우 마련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5억, 7억이 어디 있어서 재개발하는 아파트에 들어오라는 거냐”며 이건 가난한 사람을 내몰리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신다. 이곳의 분양권을 팔고 자식들이 구해준, 사방이 콘크리트로 된 원룸으로 터전을 옮긴 할머니들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왕왕 들린다는 것이다. “사람 쬐멍 살아야주. 사람이 곁에 사람이 있어야 살아져”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옆 동네로 이주하신 할머니들도 매주 이도주공 아파트 경로당으로 모인다. 지난번 아파트 숲 산책 프로그램을 진행 하며 정원사 선생님이 ‘나무도 사람 같아서 어린 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도 살 수 있지만 이곳에서 평생 산 이 나무들은 다른 곳으로 이식해도 잘 살 거란 장담을 못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사람 또한 나무와 같아서 10대 20대 때는 다른 나라에 이민 가도 살 수 있지만 80대가 되어서 다른 곳에 적응하려고 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옆 동네로 옮겼어도 할머니들에게 이건 단순 이사가 아닌 뿌리 뽑힘인 이유다. 좋은 생각의 흐름은 아닌 것 같지만 요즘은 계속 비켜주고만 있는 할머니들에 내 노년을 이입하게 된다. 내가 계속 이렇게 돈을 못 벌면서 늙어가면? 그때 나도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며 더 바깥으로 몰리게 될까?

어제 만난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근데 이 재개발로 분명 이득 보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너무 사회적 약자 시선으로만 보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이 재개발로 부자가 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만약 재개발을 찬성하는 사람들 인터뷰를 이 영상에 붙인다고 해도 그 사람은 돈 밝히는 사람밖에 더 되나, 그럼 그 사람이 나쁘게 보이는 거 아니냐고. 재개발로 돈 버는 것이 나쁜 일도 아닌데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나오는 다큐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지겹다고도 했다. 순간 아차 했던 건 내가 이 다큐 작업 초기에 ‘나는 풀 한 포기도 생명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공사 포크레인 앞에서 나무를 껴안는 저항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다큐 역시 없어져갈 식물들을 ‘기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가벼이’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주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의 고유한 우주 잖아요. 나도 그렇고. 큰 시스템에 ‘어쩔 수 없는’것으로 남겨두기만 해도 되는 걸까? 이 대화를 나누고 머리가 너무 아팠던 건, 나도 확실히 ‘이건 이거’라고 생각하면서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하지 않았고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 내 생각도 자꾸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의 저런 의견에 제대로 반박할 만한 내 논리가 없었다는 생각도 들어 하루 종일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가난’은 그리고 세상의 어떤 일들도 피해와 가해로 단순히 나뉘지 않는다. 심지어 분양금이 있어 다시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 혹은 단순 세입자여서 좀 더 후진 공간으로 이동하는 사람이라도 그렇다. 우리는 어떤 도시개발의 수혜와 피해를 동시에 입고 있다. 최초의 이도주공은 단순한 서민 아파트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저렴한 집값 덕분에 노동 시간을 줄여 쉴 수 있었고, 한숨 돌릴 여유를 얻었다. 먹고 자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삶의 기억이 쌓이는 장소가 되었다. 나 역시 몇 년 전 영화를 만들며 나만의 작업실이 필요했을 때 가장 먼저 이곳 이도주공을 떠올렸다. 나는 이곳에서 3년간 작업실을 꾸렸다. 외주작업을 했고, 영화를 찍었고 수많은 친구들이 드나들었다. 궁핍한 내가 구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가난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내가 상업 드라마 스태프로 일할 때 세트장 안에는 내가 상상하지 못하던 고가의 가구와 설치물들로 가득했다. 실제로 그 드라마가 방영되고 시청률 1위를 할 동안 아무도 ‘부자들을 우상화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들 이제는 투명하게 돈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저 여배우가 입은 옷이 얼마인지, 불가리 약혼반지가 얼마짜리인지 궁금해하고 재벌을 추앙할 뿐이다. 미디어에서 가난한 집을 그릴 때도 지금의 나는 살 수도 없는 넓고 단정한 집인 경우가 많다. 보고 싶은 가난이란 그 정도인 것이다. 비가 새고 닦아도 닦아도 생기는 곰팡이 같은 가난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보여주지 않는다. 테레비에 나올 자격은 따로 있다.

그래서 ‘나 하나쯤이야 이런 다큐 만들어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상이 온통 플렉스로 가득한데 나는 그냥 여기서 남이 이사 가며 버린 화분 살리면서 본인도 살리는 사람들 얘기하면 안 되나? 사람들에게 공감을 구걸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내가 촬영하면서 나에게 끼친 영향들,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 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조금씩 가난하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원하는데 아무도 ‘조금이라도’ 가난해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비주류의 의견이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이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기적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언젠가 내가 아주 목소리가 작아지고 잘 안보이는 할머니가 됐을 적에도 함께 살자고 외쳐줄 이웃을 원해서 지금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언젠가는 다 약해지니까. 도시도, 집도, 인간도 결국은 함께 버티는 방식이 필요하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완성하게 될까? 겁이 많은 나는 그저 오래된 나무의 상실을 안타까워하고 지난 추억들을 그리워하는 ‘안전한’ 다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미 그렇게 작업하고 있다. 나는 도시화나 빈곤문제를 다루고 싶다가도 괜한 적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더 정확히는 부자들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다. 그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서 더 좋은 장비를 쓰고, 적어도 내 인건비는 받아 가며 일하고 싶다. 처음 만들어보는 다큐인데 벌써 잘 완성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 그러니까 웃긴 것이다. 내몰리는 사람을 찍으면서 나는 결핍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런 마음이. 아니 사실 하나도 안 웃기다. 내가 타인의 인생을 헐값에 파는 사람 같다. 그래서 작업자로서 어떤 마음으로 촬영해야 하는지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이 공간을 기록하면서 가난을 보여주려는 걸까, 아니면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싶었던 걸까? 아, 작업과 나를 동일시하지 말자고 매년 그렇게 다짐을 하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약간 망한 조짐이 보인다. 책상에서 기지개를 켜는데 인터뷰이가 촬영을 마치고 내게 준 베고니아 화분이 보인다. 자기보다 더 잘 키워줄 분이라고 생각되어 드린다고 하셨다. 선생님 사람 잘못 보셨네. 내가 이렇게 후진 인간인 걸 알면 실망하시겠지. 화분에 물을 주고 창가 햇빛을 잠깐 쬐어줬다. 겨울이라 날씨가 춥다. 얼른 창문을 닫고 화분을 들인다. 사람도 식물도 겨울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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