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엔드>를 보고
며칠 전, 구글 문서를 정리하다 우연히 5년 전 일기를 발견했다. 거기엔 2020년에서 2021년의 내 시절이 꼬박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제작지원서를 쓰다 말고 한참이나 과거의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단지 글을 읽었을 뿐인데도 그때의 상황과 감정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래서 조금 기쁘고 살짝 아팠다.
나는 늘 내가 좀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글을 읽다 보니 30대 초반의 나는 무척 순진하고 귀여웠다. 그때 당시 나를 만났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일기에는 친구에 대한 칭찬과 룸메 언니의 멋짐, 영화를 처음 시작하며 만난 동료들 이야기가 잔뜩 적혀 있었다.
“맨 처음에 봤을 때만 해도 거의 아기였는데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역시 내 베프이고 내가 죽을 때 순장해야 한다. 얘랑 오랫동안 좋은 친구로 남고 싶다고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했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이번에 만난 좋은 사람들과 정말 좋은 작품을 같이 해보고 싶었는데 아마 이번 생에 그럴 일은 없겠지. 아쉽다. 일로 만난 사이는, 일할 땐 세상 둘도 없는 가족 같으면서도 일이 끝났을 땐 연락할 이유를 찾는 사이인 것 같다.”
“언니에게 검사 결과를 말해주고 담주에는 종합검진을 받는다고 하니까 진짜 가족처럼 걱정해 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아프면 아프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기쁘면 기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당시 나는 스스로를 ‘촌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인연에도 마음이 많이 쓰인다고. 아니,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자국이 오래 남는다고 적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내 주변의 좋음을 잘 알아차리고 마음 다해 좋아할 수 있던 내가 너무 씩씩하고 근사해 보였다. 한 줄 한 줄 진심이 너무 가득해서 가엽고 어여뻤다.
요즘 내 일기에는 사람들 욕만 가득하다.
지난 일기 속 사람들과도 소원해진 경우가 많았다. 뒷맛이 씁쓸하다. 서른한 살의 나는 스물여섯의 상하이를 가끔 떠올리는 사람이었지만, 서른여섯의 나는 서른한 살의 일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조금 지쳤고, 마음이 차가워졌다. 그토록 바라던 건조한 사람이 드디어 된 것 같기도 하다.
영화 <해피엔드>를 보고 한참을 내가 지나쳐온 수많은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에 어디 릴스에서 인가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같은 페이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둘 중 누군가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게 됐을 때 더 이상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하진 않은데 그 말이 가끔 떠오른다. 나도 어떤 관계에서는 남겨졌고 어떤 관계에선 매정하게 떠나갔다. 그 어떤 것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죽고 못 살던 사람이 한순간에 전혀 궁금하지 않게 될 때도 있었고, 처음 만날 때 ‘아 이 사람 좀 쎄한데?’라고 했던 이와 오랫동안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며 사람 보는 눈이 생겼네 어쨌네 해봤자 나는 늘 이 선입견을 기분 좋게 틀리며 살아간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누군가의 자리를 어떤 이가 채운다고 해서 나와 그의 고유한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단 말이다. 그런 말은 좀 안일하고 냉소적이라고도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저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맥락인지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문이 닫히면 다른 곳에서 새 문이 열렸다. 나는 다만 그 문이 잘 여닫히는지 지키고 서있는 문지기인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내 인생 단계에 필요한 사람들을 당시에 만났고,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을 땐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내가 먼저 다가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게 사건처럼 찾아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니 나는 그저 오고 가는 이를 잘 배웅하고 환대하며 경칩에 기름칠 정도 하는 수밖에 없다. 지나가고 다가올 시절들이여~
평소에는 영화를 혼자 곱씹는 걸 좋아하지만, <해피엔드> 상영 뒤 하나, 선우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묘하게 마음을 더 깊이 열게 했다. 선우 작가님이 저 엔딩의 장면은 두 친구에게 잊히지 않을 순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 함께 하교하던 육교 위에서 괜히 평소 하던 장난을 마지막으로 친 순간이 멈췄던 씬. 찰나는 영원으로 박제되었다. 나는 그 장면을 생각하다 어쩌면 저 두 사람은 저 날의 대화도 까맣게 잊고 지낼 날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뜨겁게 함께했지만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단 걸 알았을 때, 이 관계의 생명이 여기까지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잘 이별하기 위해서는 정말 잊는 것 밖에 없을 때.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나고, 수많은 문이 열고 닫힌 뒤 언젠가 그 시절을 통째로 ‘좋았었다’라고 겨우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 두 사람은. 한때 가장 소중했던 관계도 그저 시절 인연으로 남게 되어버린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좀 쓸쓸했다. 나는 멀어진 사이를 억지로 붙여보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괜히 한 번 더 만나서 우리가 영영 이전 같지 않은 친구가 되리란 걸 확인하는 우정의 관계가 근 몇 년간 생겼었다. 지난 우리를 그런 사이로 땅땅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만나는 걸 미루는 사람이 되었다. 미루고 미루면 어디까지 밀리려나. 이렇게 서서히 디졸브 되는 것 역시 함께 ‘끝’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엔딩을 맞게 되겠지.
해피한 엔드는 언제나 과거 시제다. 지금 이 자리, 인연의 파도 한가운데에서는 행복도 마지막이라는 감각도 그저 스쳐 지나간다. 오직 충분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시절을 단락으로 묶을 수 있게 된다. ‘좋은 시절이었다’ 도착은 왜 항상 추억보다 느릴까. 과거와 그 앞의 대과거, 내가 지나온 수많은 해피엔드가 떠오르는 밤이다. That was a happy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