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서...
최근엔 오랜만에 헬스장을 끊었다. 한동안 히마리가 없어 힘쓰는 일은 죽어도 못하겠더니 조금 기력을 회복한 듯하다. 근력 운동을 할 때는 마음과 연결된 몸 말고 그냥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몸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팔을 위로 뻗어 고리를 넓게 잡고 팔꿈치를 바닥으로 당기며 가슴을 펴면 날개뼈 가운데에 자극이 온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와이드 스쿼트를 하며 무릎을 굽히면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이 타겟팅 되고 이너타이와 아웃타이를 할 땐 내전근과 하체 바깥쪽이 작동한다. 근력 운동은 매일이 일종의 배움인데 손 잡는 위치를 바꾸고, 무게를 증량해 허벅지가 타는 것 같아도 이런 움직임엔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나는 이런 몸을 가졌구나 인식할 수 있다. 내 몸은 어떤 인문학적, 정신적 의미를 갖고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나라는 뼈와 살이 있는, 근육이 움직이고 피가 도는 개체로 존재한다. 나는 이걸 과거 50회에 300만 원짜리 피티를 받으며 알게 되었다. 신체 여러 부위가 연동하므로 자극 부위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기에, 피티를 하면서 누가 내 몸을 만지거나 내가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는 게 이상하지 않게되었다. 이건 그냥 몸이니까. 다른 거창한 의미는 필요 없었다. 늘 외적인 것에 휩쓸리느라 괴로웠던 내겐 새로운 감각이었다. 내 몸엔 모양과 무게 너머 기능과 역할도 있었구나. 이건, 단지 몸일 뿐이야.
어릴 땐 그러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보이고 남들이 그런 나를 무엇으로 불러주는지가 중요했다. 유치원 졸업앨범을 보면 단체사진마다 나만 한 칸 더 삐쭉 올라가 있었다. 당시 그 유치원에서 가장 예쁜 아이는 사진 찍을 때마다 너는 발받침 위에 올라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삼십 대가 된 지금 이런 말을 쓰는 게 뭔가 웃기지만. 어쨌든 그랬고. 점점 통통해져 부모님과 외가 식구들에게 끊임없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나는 가장 예쁜 아이였다.
다리에 깁스를 하게 되어 학교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날이었다. 학교 주변에 떠돌이 개 두어 마리가 돌아다녔고 재빠른 친구들은 도망갔지만 나는 겁이 나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버렸다. 그때 동네 노숙자 아저씨 같은 사람이 개를 쫓아 줬고 너 참 예쁘구나
입속으로 혀가 들어왔다.
몇 년 뒤에는 사촌 언니네 집에 갔다가 밤중에 사촌 오빠가 내가 자는 방에 들어와서 내 등과 허리를 더듬으며 입을 맞췄다. 그러다 그가 바지를 벗기기 전에 벌떡 일어났다. 괜히 새벽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교에서 말을 제일 잘한다던 나도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므로, 아니 지금이라고 뭐가 더 나은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빠네 직원이 우리 집에 술 마시러 오면 불쑥불쑥 내가 자는 방에 들어와 이불을 걷었고. 당시엔 성폭행이 뭔지도 몰랐지만 떠올려보면 기분 나쁜 경험들이 내 유년 시절에 종종 있었다. 이제는 굳이 애써 되짚어봐야 떠오르는 기억이지만.
학교에서 가장 뚱뚱한 여자애가 되는 동안 나는 조금 안심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너무 옛날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성인이 돼서도 이런 일들은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평소 내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던 사람이 밤에 술자리에 불렀을 때, 왜 나는 거기에 나갔지? 그 사람이 우리 단체에 다른 여자들을 사귀고 싶은 순서로 품평 한 걸 알고 있었으면서, 살다 보면 그런 일들 숱하게 마주한다고, 왜 건방 떨었지?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아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을 때는 그냥… 나도 좀 남들처럼 인맥 도움도 받으며 쉽게쉽게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를 무지막지하게 껴안았을 때 순간적으로 이건 폭력이구나, 당신이 나보다 위에 있단 걸 확인하고 싶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동석했던 다른 남자가 조용히 자리를 비킬 때, 하필 그 사람이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서 봤던 사람일 때 내 마음은… 눈물이 나진 않았다. 그저 일주일 뒤에 당시 하던 작업을 잠정 그만하기로 했고 조금 많이 부끄러웠다. 근데도 이런 일들은 너무 빈번해서 일일이 브레이크를 걸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나는 그리고 내 친구들은 개가 짖을 때마다 멈추면 목적지에 못 가니까. 그런 새끼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고 내가 뭘 어쩌겠냐 싶어서. 아니 그냥 딴엔 페미니스트라고 지껄였던 게 무색하게, 그 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못한 내가 수치스러워서. 없던 일처럼 넘어갔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거나 영영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기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숨 쉬듯 떠다녔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랑도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떤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나 따위 망가뜨리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사이엔 틈이 없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오는 길에 스스로 지워버린 내 몸의 기억들을 떠올려봤다. 지난 일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끄집어내니 조금 따가웠다.
내 몸은 몸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계속 거슬렸다. 이 몸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생각이나 했을까. 사실 나는 내 큰 눈도, 까만 피부도, 예쁜 가슴과 멋진 허리 선을 좋아하지만 그게 나를 피해자로 만들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는 동시에 매끈한 피부와 날씬한 몸을 원했다. 아름다움에 뒤처져있단 조급함에 피부과 시술과 잘못된 다이어트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그러는 한편 내가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시하는, 그렇고 그런 여자일까 봐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결국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내가 좀 별로인가. 내 몸의 주인을 누군가에게 맡긴 채 이리저리 휘둘렸다.
몸은 그저 몸일 뿐인데 이 몸 안에 담긴 나는 수많은 평가와 자책, 쎈 척을 동반한다. ‘아, 뭐 나 괜찮아’ 말하면서도 진짜 아픈 줄 모르고 스스로 제대로 봐주질 못했다. 그래서 타인의 평가에 더 기대었다. 살이 빠졌다, 예뻐졌다는 말에 겸연쩍었지만 나는 좀 인정받는 기분이었던가. 혼자 존재할 수 있는 몸인데 자꾸 여기저기로 기울였다. 혼란스러웠고, 사랑 받으려 애쓰다 더 망가져버리곤 했다. 뼈와 살이 있고 근육이 움직이고 피가 도는 내 몸과 어떻게 잘 지내볼 것인가.
글을 쓰다 마음이 답답해져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가을 한가운데로 달려가며 내 고관절의 각도, 땀의 흐름과 배 어디가 땅기는지 느낀다. 오늘은 지난번엔 못 가던 지점까지 뛰었다. 이 몸과 다시 기록을 쓸 것이다. 그동안의 시간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치켜세우지도 않고 깎아내리지도 않은 채 그냥 내 몸을 내 몸인 채로 받아들여보려 한다. 쉽지 않겠지만. 숨을 고르며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내 몸의 주인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 <세계의 주인> 라이카 시네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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