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예정일

by 오씨네

나는 곧 죽는다.





이 말을 내 입으로 하고야 마는구나… 나는 죽는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문득 ‘이제 며칠 남았지?’라는 생각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날짜를 거꾸로 세어보았다. 6개월? 아니 4개월 며칠쯤이던가…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다. 여전히 어떤 대비도 하지는 못했다. 근데 새삼 무엇을 준비할 수 있단 말인가. 의식적으로 죽음에 관한 생각을 피해왔는데,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이따금 지나온 날들보다 남은 날이 터무니없이 짧은 것 같아 초조해질 때가 많다.




우습지만 이 모든 건 오래전 어떤 꿈에서부터 시작됐다. 별 의미 없는 꿈으로 넘기기엔 거기에 메어있던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그런가 어느 순간부터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은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이 주는 가뿐함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16년 전부터 떠날 날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몇 달 전엔 생명보험 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교육을 받고 시험에 합격하면 돈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였다. 두꺼운 교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다치고, 사고가 나고, 병들었다. 치료 과정뿐만 아니라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사람들을 피 말려 죽게 했다. 백여 명이 꽉 들어찬 강의실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중 미래를 조금도 대비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그 흔한 실손보험도 없는 데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들은 이렇게 고통을 준비하는구나. 그러니까 내가 아플 것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서 보험을 들고, 오래 살 것을 대비해서 보험을 드는구나. 내가 이러다가 정말 오래 살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겁이 나기도 했다. 이제라도 준비를 해야 하나. 그건 내 구상에는 없는 일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내 삶의 기한은 정해져 있었다.





죽음에 대해 쓰려다 보니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고 또 죽는다.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으면서 왜 죽음에 대해서는 피하고만 싶을까. 뭔가 우울해 보이고, 죽겠다고 협박하는 것 같고, 내가 ‘죽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은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삶을 끝내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 박정미 작가님의 ‘0원으로 죽는 삶’ 강연을 들었다. 어떻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이란 말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흥미롭고, 동시에 낯선 관점이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긴 시간 내 안 어딘가에 갇혀 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슬며시 떠올랐다. 강의가 끝나고 소감을 말하다가, 나는 혼자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작가님이 왜 눈물이 나냐고 물으셨다. 그날 밤에도, 그 후로 며칠 동안 계속 생각했다.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과정이고 죽음 역시 삶의 일부다. 머리로는 받아들였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인간의 숙명이다. 그런데도 어떤 것이 두려운가. 내가 어떻게든 ‘살아있기’를 선택하는 사람이라서 두렵다. 막상 이 생에 애착이 너무 많다는 사실만 자꾸 깨닫게 된다. 애착, 집착… 나는 이 ‘착’을 못 버린다. 아직 무엇도 놓을 준비가 안 되어있다. 가진 것도 별게 없는데 못 놓아서 이렇게 안달이라니 웃기다. 나는 삶이 너무 좋다고 느끼지 못하는 순간조차 뭔가를 기대한다. 내려놓고 보내주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날 안 죽을 거라 믿으면서도, 시간은 늘 내 마음보다 부산히 달려간다. 그래서 강연 이후로 죽고 싶기도, 살고 싶기도 한, 미련 뚝뚝 내 마음은 요즘 매일이 지각변동 중이다. 마음 수양을 하고자 집에서 즉문즉설을 듣기 시작했다. 늘 오는 것은 오는 대로, 가는 것은 가는 대로, 물 흘러가듯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부처님이 아니세요… 어쩌겠어. 마음으로는 잘 안되는 것을…




아, 근데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혼자 죽는다는 것이 뭔가 억울하다. 나도 삶의 좋은 것들을 누리고 싶다. 지긋지긋한 인간들을 견디면서, 견디다 못해 친구들에게 성토하면서, 글을 쓰면서,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가면서, 내가 모르던 사람의 삶을 내 삶에 받아들이면서, 가끔은 모두에게 어쩔 수 없음이란 게 있다고. 사실은 사람이 거기서 거기고, 당신도 나만큼이나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런게 산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손절하고 끊어내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도 좋고 깔끔하니까. 익숙했었는데 이 지난한 과정을 받아들인 뒤론 사람들의 다층적인 면모를 알게 된다. 산뜻한 관계에서 끈적이는 관계로 넘어가며, 나는 비로소 스스로 삶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죽음에 대해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애쓰다가도,

정작 내겐 죽음이 ‘날짜’를 가진 사건으로 찾아온 오래된 꿈이 고여있다.





2010년으로 갓 넘어온 겨울이었다. 한낮의 외가댁 거실엔 외할머니와, 그즈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자살한 친구가 함께 앉아있었다. 친구는 자기와 같이 어딜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린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잖아. 싫어.

할머니가 벽에 걸린 커다란 달력을 걷었다. 어디 한 칸을 짚으며 말했다. 몇 년도 몇 월 며칠 금요일. 이날이라고. 너는 이날 죽게 된다고 했다. 네? 뭐라구요? 나는 도망치듯 뛰어나갔다. 대문을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비둘기떼가 나타나 구구구구. 내 다리를 마구 쪼았다.

으악. 통증을 느끼며 눈을 번쩍 떴다. 어? 원래 내 허벅지에 멍이 이렇게 다다닥 있었나. 바로 핸드폰을 켜고 날짜를 찾아봤다. 몇 년도 몇 월 며칠…

아. 그날, 진짜 금요일이네.




당시 가장 친한 단짝과 하루 종일 단식기도를 했다. 샤머니즘을 꽤나 신봉하는 우리 외가에서는 난리가 났다. 엄마는 일단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자체 휴강을 한 나는 제주에 내려가 몇 날 며칠을 누워만 지냈다. 이모는 사람이 당장 다음 주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서른일곱은 아주 먼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너는 앞으로 그때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면 되는 거야. 그날 이후로 내 삶에는 하나의 ‘예정일’이 생겼다. 그때까지만 살면 된다. 견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돌아와 조금씩 시들어가던 나를 위해 동기들이 매주 자취방에 찾아와 밥을 해놓고, 그다음 주엔 내가 먹지 않아 말라붙은 밥을 버리고 다시 밥을 해놓고 갔다. 친한 언니는 매주 도시락을 싸와서 학생회관으로 나를 불렀다.

수진아.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밥은 먹고 잠은 자야지.

너는 앞으로 매일 시간이라는 알약을 하루에 한 알씩 먹는 거야.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바로 그 뜻인 걸 알게 될 거야. 나아질 거야.

스물한 살의 봄. 난생처음 겪었던 주변의 죽음과 내 죽음의 공포로 목이 메었다. 언니 이거 아삭이라 매. 근데 너무 맵다.






그 몇 년도 몇 월이…

음…아니다. 그냥 말하겠다.

2026년 4월 10일 금요일. 이날이 내가 죽는 날이다.



이 날짜를 글로 적는 건 정말이지 처음이다. 그러니까 나는 스물한 살 때부터 오늘까지 지난 16년간 이 날짜를 마음속 깊이 품어왔다. 사실은 무서워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혹시 예언처럼 이뤄지면 어떡해. 그런데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십 대 땐 서른일곱이라는 게 오지 않을 숫자처럼 멀게 느껴지더니, 서른이 넘어서는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겁이 날 때가 많았다.

스물몇 살에 나는 하루빨리 죽고 싶었는데 서른몇 살의 나는 내 인생에 나타날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세상에 나올 좋은 영화가 궁금하고 내년 4월이 지나 5월이 됐을 때 맞이할 내 생일도 기대된다. 그리고 내가 쓸 수도 있었을 수많은 글과 만들 영화들을 기대하고 싶어졌다. 이제서야 좀 살고 싶어졌는데 6개월도 안 남았다니 너무하는 것 아닌가.





요즘은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심장이 좀 더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날짜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비록 여전히 예정일까지의 마음만 가지고 살고있다. 그 뒤의 시간은 감히 상상해 보지도 못했지만 바라건대는 내게 2027년, 2028년의 4월 10일이 오기를. 조금 더 오래 살아서 삶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지겨운 인연들을 견디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지기를. 오늘도 하루치 알약을 삼켰다. 남은 시간을 꼽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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