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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는 사랑
하루 종일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하루 쉬었다가 틈틈이 극장을 찾는 영화 명절을 보냈다. 세상에. 씨네필이야뭐야. 가끔씩 영화를 볼 때 스크린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보거나, 크레딧에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이름을 보거나, 극장을 나서서 그 아는 사람과 영화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저기요, 뭐 영화인이세요? 내게 직업이란 결국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지난 2년간 무엇하나 직업이 아닌 상태로 지내오면서도 이 바닥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오래전에 문화원에 근무할 때 예술 하는 것들 상종을 못하겠다고 공연히 말하고 다녔는데 천벌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즐거울 때는 아무렴 신이 나서 영화를 실컷 떠들 때라는 사실이 기가 막힌다. 감독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구상했을까 짐작해 보고, 배우들이 연기를 어쩜 이리 잘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아직도 이런 영화를 보면 두근거릴까. 이번 영화제에서 본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본인의 출신과 성별, 사회 분위기를 뚫고 나가려는 주인공을 보았다.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씩씩하게 저항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도 용기 내고 싶어졌다. 내가 살아갈 세상의 당사자인 내가 더 부딪혀야 한다.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얼마 전 나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되어 주변에 얘기하고 도움을 구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간 ‘폐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갇혀 늘 끙끙 앓기만 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불안한 나를 이해해 달라고, 좀 도와달라고 말하는 과정이 어색하고 또 후련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지. 친구와 동료들과 보탬을 주고받으며 이 연결성을 믿어보겠다. 순진한 생각일지라도 이것마저 저버린다면 무얼 기대하며 살 수 있을지. 내 안에서 오래 고여있던 이야기를 끌어올려 울타리 너머 사람들에게도 건네고 싶다.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해야 한다” 영화제에서 본 다른 영화는 말했다. 여전히 작업과 일상이 뒤엉킨 나는 혼란스러운 것 투성이다. 지난주엔 촬영 날에 갑자기 잠수탄 사람을 카페에서 10시간 동안 기다리다 접고 돌아왔다. 이건 개인인 나로서는 정말 괴로운 일이다. 그런데 연출자 입장에서는 주인공의 불안이 극대화되는 좋은(?) 시련이라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게 너무 어이없다. 이 영화는 그리고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아직 내가 얼만큼 책임질 수 있는지 모르니, 어쩔 수 없이 이제 사랑할 수 있을 만큼 감당하며 나가야 한다. 이러다가 힘들다고 징징댈 게 눈에 뻔하다. 그래도, 그럼에도 기꺼이 사랑을 짊어지리라.
# 눈처럼 소복이 쌓인 마음
창틈 사이로 추위가 슬그머니 찾아오는 계절이 돌아왔다. 찬 공기에 목은 금세 칼칼해지고 움츠러든 어깨만큼 마음의 공간도 좁아진다. 하지만 이런 겨울밤에 눈이 온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장르로 전환된다. 눈, 하얀 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본 사람마냥 입을 헤- 벌리고 쏟아지는 무수한 하얀 점들을 바라본다. 하얗고 가벼운 눈이 나풀거릴 때 겨울은 비로소 생기를 되찾는다. 무사히 눈을 맞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시려운 손을 패딩 주머니에 찔러놓고 볼이 빨갛게 될 동안 성과니 의미니 하는 것도 잠시 잊는다. 살면서 몇 번의 눈이 내게 더 찾아올까. 함께 눈을 맞는 경험이 몇 번이나 더 남았을까. 8월부터 캐롤을 들으며 정신승리하던 나는 ‘겨울’이라는 단어에 따뜻함도 포함이란 걸 알게 되었다.
행복할 때 글 쓰면 싸이코패스라면서요? 저는 요즘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걔네들 앞에서만 울어서 조금은 행복한 싸이코패스로 살고 있습니다. 우풍은 여전히 서러워서 창문에 뽁뽁이와 우레탄 비닐을 붙여요. 어째서 이렇게 다들 쉽게 떨어지는지. 방안을 감도는 냉기에 미워하려다 어제 또 눈 덮인 동네 사진을 잔뜩 찍어서 이 겨울을 좀 봐주기로 했다, 이 말입니다.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론, 나를 등장인물로 보게 되어 다른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든다. 떨어져서 보니 둘러싼 세계가 꽤나 촘촘히 주인공을 지켜주는 게 보일 때가 있다. 이를테면… 왜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내게 이런 내밀한 얘기를 하며 최선의 위로를 하는지, 왜 나보다 더 놀라 어디 여행이라도 가자고 하고, 왜 촬영 KTX 비용을 후원한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이체하는지. 뭐든 돕고 싶다고 말하는지. 아직 이해할 수는 없었다. 홀로 찬 바람을 견디는 줄 알았는데 선뜻 온기를 나눠주겠다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겨울을 나며 마음이 쌓인다.
이번엔 다음을 기다리는 계절 말고 그냥 겨울, 이 추운 계절을 잘 지낼 궁리를 하고 있다. 바깥이 매서우니 내 품 안을 따스히 덥혀둬야지. 등유 난로와 고구마, 귤과 뜨거운 차를 마련해 둘 것이다. 읽을 책과 볼 영화 그리고 친구를 초대할 마음의 구석을 치워두겠다. 상상만으로 벌써 포근해진다. 객관적으로는 인생이 나아지지 않는데도 내가 삶을 점점 더 사랑해서 큰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나를 좋아해 줄 수는 없을까. 멜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함박눈이 풀풀 나린다. 세상이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 이대로는 아까워서 못 떠나…
긴 겨울의 초입이었다. 친구와 눈을 맞으며 깔깔 웃었다. 우리는 마치 영원을 사는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