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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Oct 22. 2023

14화. 마음에 비를 뿌리다

  날씨가 우기 때라서 그런지 비가 자주 내린다. 그러나 비는 오래가지는 않는다. 

오늘은 끄라비에서 마지막 날이다. 딸은 3박 4일의 짧은 휴가를 내고 왔기 때문에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우리도 함께 갈 것이다. 우린 출국 일정이 아직 남았기에 방콕으로 가는 국내선을 타고, 딸은 국제선을 타게 된다. 끄라비 공항에 도착하면 거기서 헤어져야 한다. 택시도 내일 새벽 5시에 호텔에 도착하게끔 예약을 했다.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라서 공항까지 가는 시간을 계산한다면 여유가 없다.


 홍 섬(Hong Island)까지 연이어 이틀을 섬 투어를 하고 나니 몸이 나른하고 피곤하다. 섬 투어를 하고 오면 몸과 옷에는 모래가 잔뜩 묻어 있기에 호텔 안을 더럽힐까 봐 조심해서 올라간다. 옷을 씻고 샤워를 끝내고 나니 무섭게 내리던 비도 그쳤다. 의논 끝에 끄라비 타운으로 가기로 한다. 처음 가는 곳이지만 야시장이 열리기에 구경도 할 겸 저녁을 거기서 먹기로 한다. 성태우 몇 대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가격 흥정을 하다가 왕복 650 바트에 가기로 결정을 한다


 사자성어에 '대실소망(大失所亡)'이란 말이 있다. '바라던 일이 허사가 되어 매우 실망하다'라는 뜻으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대와 믿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끄라비 타운에 내리니 거리가 조용하다. 상점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 있고 불들이 꺼져 있다. 어둠이 내린 거리가 더 어둡고 조금은 삭막하다. 차가 주차된 곳으로 언제까지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선 우리는 길을 건너 야시장을 향해 간다. 시장 안에는 가게들과 사람들로 활기는 띠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에 꼬마 아이 하나가 좌판을 벌여놓고 앉아 있다.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비는 그쳤지만 비가 내린 길은 아직 촉촉하게 젖어 있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그 모습에 내 마음도 촉촉하다. 약하지만 가는 빗방울도 다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시장 안에 있는 무대에선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와 불쇼 등이 펼쳐지고 있지만 보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몇 가지 사가지고 온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고 먹으려 하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에 우산을 펴고선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비 내리는 시장 안에서는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어 우린 그냥 걷기로 하고 걷기 시작한다. 걷다가 보니 부근에 쇼핑센터가 있기에 들어가 본다. 1층에서 5층까지 눈 구경으로 맴돌다 그만 거리로 나와선 주차하고 있는 썽태우로 돌아간다. '대실소망(大失所望)'이란 단어가 지금 우리에게 꼭 들어맞는 이유이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마지막 밤을 보내기가 아쉬워 큰 기대감에 먼 길을 달려왔지만 실망만 하고 돌아가다니. 우리는 돌아가는 썽태우 안에서 폰으로 음악을 틀기 시작한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음악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나선 여기서 또 듣는다. CCR의 'Have you ever seen the rain' 비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기에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는 덧붙여서 내일 새벽이면 딸과 또 헤어지기에 거리에만 뿌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도 비를 뿌리고 있다고.


 태국에서 시작된 무모한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 두 사람은 마주 보며 눈으로 약속한다. '그곳으로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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