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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Oct 21. 2023

11화. 두고 온 아카 커피

 치앙라이 마지막 날 점심을 맛있게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간다. 커피숍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가볍기도 하다. 도시가 주는 은근한 매력에 푹 빠져 지냈는데 이제 떠난다고 하니 발걸음이 무겁다. 하지만 치앙라이 북부의 고산족인 아카족이 재배한 원두를 내린 커피를 마시러 가는 발걸음이라 가볍다. 


 고산족은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서 살고 있는 종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카렌족, 몽족, 아카족 등 9 부족 70만 명 이상이 살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규모가 있는 종족은 대략 6개 종족으로 본다. 

라후족, 몽족, 리수족, 카렌족, 미엔족, 아카족이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풍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종족도 있어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치앙라이 북쪽 미얀마와 국경 지역에 맞닿은 고산지대에는 아카족이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다. 집집마다 커피를 재배하고 그 재배한 원두를 따서 말리고 껍질을 벗겨내는 풍경도 볼 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전에는 세계 70%를 재배하는 아편 재배지였다. 바로 경사지를 따라 층층이 집을 지어 사는 아카족 파히 마을이다.


 태국 사람들은 이들을 '이 꺼'라고 부른다. '이 꺼'는 아주 천한 노예라는 뜻이다. 아카족의 삶이 얼마나 고된 삶이었는지를 잘 알 수가 있다. 이들은 태국인이 아니기에 태국의 교육 및 의료 혜택 등의 기본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아카족 여인들이 색동저고리 옷을 입고 원을 그리며 도는, 민속춤을 추는 모습은 마치 우리네 여인들이 그리는 원(강강술래)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다행히 태국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수년간의 고된 시간을 끝내고 성공적인 커피 생산지로 거듭 나고야 만다. 그게 특유의 풍미와 향을 가진 아카 커피다. 우리는 그 아카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이다.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커피숍에 들어가니 여인의 전통 저고리와 가방이 걸려 있다. 판매용인지 아닌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우리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원두커피를 파는 곳이라고 알면 그만이다. 여기가 바로 Akha Hill Coffee Roastery다. 나는 오늘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마시고 싶어 더티 커피와 에스프레소를 각각 시킨다. 그들의 고된 삶이 녹아들었는지 커피 맛은 오묘하면서 진하다.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의 여행을 마치고 이제는 태국의 남부로 갈려고 한다. 산을 봤으면 바다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섬으로 갈 것이다. 치앙라이에서 아직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작고 허름한 낡은 도시인 치앙라이에서 아리랑도 들었다. 어제저녁을 나이트 바자에서 먹는데 갑자기 아리랑 노래가 들려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봤다. 한 무리의 댄서들이 한복을 입고 부채를 흔들며 아리랑 곡에 춤을 추고 있다. 우리만 놀란 것이 아니다. 그곳에 있던 한국 관광객들이 다 놀란 모양이다. 무대 위에 놓인 통에 팁을 넣으러 줄지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국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 치앙라이에서 아카족이 재배하여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아카 커피의 맛을 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우린 천천히 잔을 입에 갖다 대며 커피 향을 맡고 맛을 음미한다.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였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쳐 가며 허둥대기도 했고, 짧은 언어 구사에 답답해 가슴을 치며 속으로 울기까지 했다. 


 여행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정말 필요한 것 같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더 소중하고 중요한 여정이다. 삶이란 긴 여정의 여행에 나 또한 그 길을 떠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에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쉬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온다. 한참 시간이 지나 버스터미널에 가서야 알게 되어 가슴을 치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우린 그 가게에 진열된 커피를 산다는 것을 깜박 잊고 나왔던 것이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인생이란 잊고 사는 건지 살면서 잊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도 아카 커피 특유의 풍미가 입속에서 맴돌며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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