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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Oct 22. 2023

12화. 수랏타니행 기차를 타다

 태국 북부지역의 문화와 음식을 겉만 훑어봤다. 그래도 태국의 도로에 캐리어를 끌고 다닌 지가 벌써 20일이나 된다. 아직은 젊다고 외쳐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몸이 좀 피곤하다. 고마운 것은 몸이 아프지 않고 항상 건강하게 다녔다는 것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혹시 다치거나 아플 것에 대비해 준비해 온 상비약만 해도 한 봉지 가득하다. 앞으로 10일 동안도 건강한 몸이기를 바랄 뿐이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를 거쳐 치앙라이까지 간 거리가 약 890km나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왕복 거리보다 조금 더 멀다. 그것도 기차나 버스를 타고 움직였으니 대단히 건강한 몸들이다.


 우리는 치앙라이에서 다시 방콕으로 내려왔다. 남부 해양도시로 가기 전에 잠시 들렀던 것이다. 890km의 거리를 다시 움직였으니 1,780km의 거리를 60대 시니어 두 사람이 다녔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모험이고 무모한 도전이라 할 수 있겠다. 더구나 치앙라이에서 방콕까지 890km 거리는 저녁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인 슬리핑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정신 나간 행동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변화시킨다. 내 생각으로는 아주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약해지는 경우에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 부딪치면서 나아가고 쓰러지면서도 일어나 달려간다면 약해질 수가 없는 법이다. 자연은 우리 인간을 그렇게 가르친다. 

방콕에서 끄라비까지 가는 기차가 없어 종점인 수랏타니 역까지 가기로 한다. 그 거리만 또 650km이며 기차로 10시간 넘게 걸린다. 방콕의 방수역 내에 있는 크룽텝 아피왓 역에서 우린 아침 8시 기차에 오른다. 다시 계산을 해 본다. 수랏타니 역까지 가는 거리 650km를 합치면 총거리가 2,430km 다시 끄라비까지 150km 총 거리가 2,580km나 된다. 태국이란 나라를 북에서 남까지 전체를 다 보는 결과가 된다. 애초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우린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이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북부의 산악 지역과는 달리 남쪽으로 달리는 차창 밖에는 숲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야자수 나무들이 보인다. 한없이 넓은 들판과 산봉우리 그리고 야자수 나무들은 여기가 남부 지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여행을 기차로 하면 감칠맛이 난다. 방목하는 소들도 보이는 데 제법 살이 쪘다. 예전에 캄보디아에 갔을 때 봤던 소들은 모두 비쩍 말라 있었다. 국가의 경제력이 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 아닐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시간에 여유로워짐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조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 없는 여유로움에 서서히 위기가 닥치더라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시간이 흘러 수랏타니 역에 가까워지자 주변을 정리하며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30분 뒤에 기차는 종점에 도착한다.


 태국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 와서 알았다. 태국의 카페나 식당 그리고 버스 같은 교통수단 등이 모두 일찍 문을 닫는다.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다. 오후 3시나 5시가 되면 벌써 가게 문을 닫기 시작하고 저녁에는 대부분이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다소 놀랐다. 그 놀라움이 기차 안에서 다시 일어날 줄이야. 옆을 지나가는 여객 전무에게 끄라비로 가는 버스터미널은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어본다. 한참을 이상하다는 듯 우리를 쳐다본다. 그러면서 한마디 던지는 말이 버스는 벌써 끝났고 내일 오전에 끄라비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타고 가라고 한다. 망치로 머리를 한방 맞은 듯 정신이 없다. 아니, 지금 몇 시인데 벌써 버스가 끊기느냐 그럴 리가 없다고 재차 물어본다. 똑같은 말이 다시 돌아온다. 내일 오전에 타고 가라는 말. 

그다음부터 우리는 어떻게 기차에서 내렸는지 모른다. 우왕좌왕 횡설수설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다.


 캄보디아에서 근무하고 있는 딸이 부모가 온다고 하여 일부러 휴가를 내고 끄라비 공항까지 날아왔다. 아마 벌써 예약한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끄라비로 가야만 한다. 역 밖으로 나가니 호객꾼들이 에워싼다. 끄라비행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여 환전을 하지 않아서 가지고 있는 태국 돈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순간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얼굴과 등에는 진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캐리어를 잡은 손은 떨고만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기 시작한다.


 날은 벌써 어두워져 간다. 붙잡고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이곳 수랏타니에서 자고선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라고만 한다. 백척간두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수랏타니에서 끄라비까지는 약 3시간이나 걸리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 것이다. 여행은 여유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슴을 조여들게 하는 초조함도 있음을 알게 한다. 이곳으로 오면서 차창밖으로 보았던 그 아름다운 자연도 언제 사라졌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오직 끄라비까지 가서 딸을 만나야 된다는 그 생각만 날 뿐이다.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끈질기게 붙어 다니는 사람은 썽태우 기사 한 사람뿐이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던 딸이 마침내 전화를 받는다. 호텔에 이제 도착해 와이파이가 되는 바람에 벨이 울린 모양이다. 상황을 급히 설명하고 태국 돈 바트를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물어본다. 2,000 바트는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 앞에 벌어진 모든 상황은 정리가 되었고, 우린 가격을 흥정하고선 썽태우를 타고 끄라비로 출발한다. 수랏타니 역 앞에서 무려 1시간 넘게 실랑이를 벌이며 우리에게 닥친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지나고 나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깨닫는다. 

여행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여유로움과 준비된 긴장감 둘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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