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치렀던 인생의 수많은 전투(戰鬪)-이길 수 있을까?
뇌수막염은 발병 원인에 따라 크게 바이러스성 뇌수막염과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나눌 수 있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과 같은 경우는 증상이 경미하고 치명적인 후유증이 없기 때문에 건강한 성인의 경우 특별한 치료가 없어도 7~10일이 지나면 자연스레 호전된다고 한다.
하지만 세균성 뇌수막염은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보다 발병률은 낮은 반면, 환자 10명 중 1명은 사망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다.
대부분의 뇌수막염 환자는 초기에 치료하면 완전히 회복된다.
그러나 치료가 지연되면 특히 영아 및 60세 이상 환자의 경우 영구적인 뇌 또는 신경 손상이나 사망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고 일부 환자의 경우 뇌수막염에 따른 발작 때문에 평생에 걸쳐 치료해야 하기도 한다.
후유증을 갖게 되는 뇌수막염 환자들은 영구적인 정신 장애, 기억 또는 집중력 장애, 학습 장애, 행동 문제, 마비, 복시, 및 부분적 또는 전체적 청력 손실 등의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응급실을 다녀온 그다음 날은 심한 두통과 후두염, 부비동염 증상으로 목 안쪽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목 전체가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며 고개를 숙일 수도 만질 수도 없이 아팠고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는 순간이 없어 혹여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조카에게 병을 옮길까 싶어 종일 집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를 어찌 보냈는지 침대에서 비몽사몽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고 그 와중에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남편과 아이의 저녁을 챙기고는 젖은 빨래처럼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남편은 저녁을 권했지만 물만 마셔도 구토가 생기는 컨디션이 이상하게만 느껴져 내일 다시 동네 병원이라도 찾으리라 생각하며 졸았다 깼다를 반복하고 있었다.(그때 이미 졸았다 깬 게 아니고 혼절했다 정신을 차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미련스럽게도... 그걸 이른 새벽까지 참고 견디고 있었네요...)
함께 방으로 들어가자는 남편에 말에 도저히 움질 일수가 없어
"비닐봉지 몇 장하고 물티슈 좀 가져다줘. 지금 움직이면 당장 토할 거 같아. 조금 진정되면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서 자. 너무 아프면 깨울게. 걱정 말고 자."
이렇게 얘기하고는 그대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그랬더니 진짜로 혼자 들어가서 집이 떠나가라 코를 골로 자더군요. 생각이 없는 건지... 무신경한 건지... 아님, 백번 양보하고 생각해 줘서 내 말을 잘 들어준다고 해야 하는 건지...ㅉ ㅉ ㅉ. 암튼 연구 대상이에요.)
나 혼자서 견디기엔 이가 갈리도록 무섭게 심해지는 두통에 간신히 옷방까지 기어가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남편의 넥타이 하나를 골라서 머리를 있는 힘껏 동여맸다. 그래야만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걸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옛날 어머니들이 머리가 아프다며 하얀 천으로 머리를 싸매고 드러눕는 심정을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너무 목이 말라 한 모금이라도 물을 마시면 구토로 한 잔을 토해냈다.
혼자서 이렇게 미친 짓을 반복하다 문득 몸이 너무 뜨거운 것 같다는 느낌에 열을 재 보았더니 41°C 가 넘어 있었다.
딸을 등교시키고 응급실을 가려고 했던 계획을 바꿔야 할 중요한 타이밍이 돼버렸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쯤이었다.
일어서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 엉금엉금 기다시피 안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남편을 깨우며 속삭이는 목소리로(소리가 크게 내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어요.ㅠ)
"여보, 나 응급실에 가야겠어. 죽을 거 같아. 머리가 터질 거 같이 아프고 서서 걸을 수가 없어. 열이 41°C 고. 친정에 전화해서 엄마 오시라고 해야겠어. 지니 등교 때문에. 지니 등교시키고 응급실 가려고 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
그 얘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눈앞이 흐려졌고 남편이 몸을 벌떡 일으키는 모습을 끝으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우리 차 뒷자리에 엄마 다리를 베고 누워 병원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고 차에는 제부도 함께 타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도착하실 때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는 나를 두고 남편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다가 물수건을 적셔다가 내 얼굴을 닦는 정도의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시간에 119 구급대에 전화를 했었다면 이동하는 것이 훨씬 용이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가 집에 도착하신 후 아래층에 사는 새 언니를 불러 지니를 챙겨 보내며 등교시킬 것을 부탁하고 의식이 없는 나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역시 같은 동에 사는 제부를 올라오라고 하여 병원으로 급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이제 딸의 등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걱정이 됐었는지 모르겠어요. 직장생활을 오래 하느라 아픈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해야 했던 것들이 마음에 항상 걸려서 딸의 모든 것들을 손수,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히 챙겨주고 싶었나 봐요.) 엄마가 함께 있다는 안도감에 참고 버티던 두통과 몸의 동통이 극에 달했고 집에서 차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강남 성모병원 응급실로 가는 시간이 천년의 시간처럼 느껴지며 나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낮게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운전하고 있는 남편에게 애원했다.
"아직도 멀었어? 여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나 죽을 거 같아!!! 죽을 거 같다고....
엄마 나 좀 살려줘. 너무 아파. 엄마. 엄마"
원체 쇠약했던 몸에 며칠 동안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신물마저도 올라오지 않는 헛 구역질을 하며,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날듯이 달려간 차가 병원에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나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