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고 있다는 의미

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

by 강나루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베체트, 혈관성 두통, 섬유 근육 통증, 자율신경 실조증, 해리성 기억상실, 해리성 장애,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역류성 식도염, 위염, 부정맥, 목 디스크, 척추관 협착증,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고지혈증, 오십견

*마취통증 의학과 *류머티즘 내과 *뇌신경과 *정신건강 의학과 *소화기 내과 *순환기 내과 *내분비 내과

지금 현재 내가 앓고 있는 병과 내가 진료를 다니는 진료과의 명칭들이다.

이 상태로 진정? 이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다른 진료과들을 거쳐 이제 그나마 자리를 잡고 완치가 됐든, 완하가 됐든, 유지를 목표로 하던 치료에 전념을 하고 있다.(이 병들은 폭력배와 비슷합니다. 개별적으로 나를 위협하고 위험에 이르게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유기적으로 협력해 조직적으로 나를 큰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나마 3차 병원 한 곳에서 모두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 달에 정해진 양 이외에는 처방이 되지 않는 마약진통제와 수면제, 그에 준하는 안정제, 진통제들 때문에 매달 무조건 3번 이상은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잦은 검사와 시술 등으로 그보다 많은 횟수를 방문하거나 두 달에 한 번 진료를 보는 곳, 세 달에 한 번 진료를 보는 곳 등으로 항상 달력은 병원 스케줄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아픈 나는 한 사람인데 병명은 많고 날 진료하는 선생님들도 여러분이다. 그렇다 보니 생각보다 다른 병이나 약에 대한 부작용이나 후유증 등을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치료를 서두르고 약을 쓸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예를 들면 치료 초기에 극심한 두통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입원을 한 후 뇌 신경과에서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 퇴원 후 다음번 진료 때 그 차트를 보신 류머티즘 내과 교수님께서는 난색을 표하며 뇌신경 센터 쪽에 코멘트를 남겼지만 뇌신경 센터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라며 그 코멘트를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아픈 지 오래됐고 어떤 치료가 내게 더 득이 되는 건지 판단할 만한 짬밥이나 있지 그때는 아픈 것도 미칠 지경인데 가운데에서 곤란하고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이후론 훨씬 힘들고 돈도 많이 들지만 스테로이드 대신 Wash out의 방법으로 몸 안의 쌓인 약물을 씻어내고 두통을 다스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투병이 힘들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 약을 쓰면서 함께 쓰는 그 약들이 서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과 통증을 일으키는 병만 대여섯 가지가 넘고 마약 진통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이후론 통증 지수가 계속 올라가 항상 다음번 통증은 이전 통증보다 더 아프게 되어 있다는 게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분기에 한 번씩 했던 입원을 훨씬 빠른 시간으로 앞당겨 몸 안의 약물을 씻어내 줘야만 통증 조절도 하면서 치료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병원에선 말한다.


내가 crps를 앓는다고 해서 단순히 그 통증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자율신경 실조증이 따라와 몸은 불덩이 같은데 퉁퉁 붓기도 하며 땀을 비 오듯 흘리고, 그런 날은 섬유 근육통도 여지없이 심해져 신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앓게 된다.

그나마 강아지 아들 콩이가 그림자처럼 붙어 지켜보고 있지만 날씨마저 흐리면 우울은 방안을 일렁이다 못해 나를 집어삼킨다. 어느새 비닐봉지를 산소마스크 마냥 입에 갖다 대고 숨을 쉬어야 할 만큼 과호흡으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 되고 만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박자 쉬어 가고 싶었던 마음을 병은 용케도 알고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병이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에 모든 희망을 잃고 낙담하지만은 않으며 긴 시간을 버텨왔다.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다.

나는 나을 것이다.

이렇게 희망차게만 말할 순 없다 하더라도 난 그저 하루를 견디며 살아낼 것이다.


그것이 내 의지고 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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