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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n 19. 2021

18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고 있다는 의미

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베체트,혈관성 두통, 섬유 근육 통증, 자율신경 실조증, 해리성 기억상실,해리성 둔주,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역류성 식도염, 위염, 부정맥, 목 디스크, 척추관 협착증, 뇌동맥류,중성지방, 고지혈증,

*마취통증 의학과, *류머티스 내과, *뇌신경과, *정신건강 의학과, *소화기 내과, *순환기 내과, *내분비 내과 

 



지금 현재 내가 앓고 있는 '병'과 내가 진료를 다니는 '과'의 명칭들이다.

이 상태로 진정? 이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다른 '과' 들을 거쳐 이제 그나마 자리를 잡고 완치가 됐든, 완하가 됐든, 유지를 목표로 하던 치료에 전념을 하고 있다.

(이 병들은 폭력배와 비슷합니다. 개별적으로 나를 위협하고 위험에 이르게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유기적으로 협력해 조직적으로 나를 큰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나마 3차 병원 한 곳에서 모두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 달에 정해진 양 이외에는 처방이 되지 않는 마약진통제와 수면제, 그에 준하는 안정제, 진통제들 때문에 매달 무조건 3번 이상은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잦은 검사와 시술 등으로 그보다 많은 횟수를 방문하거나 두 달에 한 번 진료를 보는 곳, 세 달에 한 번 진료를 보는 곳 등으로 항상 달력은 병원 스케줄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아픈 나는 한 사람인데 병명은 여러 개이고 날 진료하는 선생님들도 여러분이다 보니 생각보다 다른 병이나 약에 대해 배려? 나 부작용, 후유증 등을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치료를 서두르고 약을 쓸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예를 들면 치료 초기에 극심한 두통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입원을 한 후 뇌 신경과에서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 퇴원 후 다음번 진료 때 그 차트를 보신 류머티스 내과 교수님께서는 난색을 표하며 뇌신경 센터 쪽에 코멘트를 남기지만 뇌신경 센터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라며 그 코멘트를 가볍게 씹어 주시는 것이다.

지금이야 아픈 지 오래됐고 어떤 치료가 내게 더 득이 되는 건지 판단할 만한 짬밥이나 있지 그때는 아픈 것도 미칠 지경인데 가운데에서 곤란하고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이후론 훨씬 고단하고 힘들고 돈도 많이 들지만 스테로이드 대신 Wash out의 방법으로 몸 안의 쌓인 약물을 씻어내고 두통을 다스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힘들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 약을 쓰면서 함께 쓰는 그 약들이 서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과

통증을 일으키는 병만 대여섯 가지가 넘고 마약 진통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이후론 통증 지수가 계속 올라가 항상 다음번 통증은 이전 통증보다 더 아프게 되어 있다는 게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분기에 한 번씩 했던 입원을 훨씬 빠른 시간으로 앞당겨 몸안의 약물을 씻어내 줘야만 통증 조절도 하면서 치료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신경과 교수가 내게 말을 했다.




내가 'CRPS'를 겪는다고 해서 단순히 그 통증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자율신경 실조증'이 따라와 몸은 불덩이 같은데 퉁퉁 부으면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그런 날은 '섬유 근육통'도 여지없이 심해져 신음소리 조차 크게 내지 못하며 앓게 된다.

그나마 강아지 아들 콩이가 그림자처럼 붙어 지켜보고 있지만 날씨라도(올봄 환절기처럼요.)

흐릴라 치면 우울은 방안을 일렁이다 못해 나를 집어삼키고 어느새 비닐봉지를 산소마스크 마냥 입에 갖다 대고 쉬어야 할 만큼 과호흡으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 되고 만다.




제가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박자 쉬어 가고 팠던 맘을 병은 용케도 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두통은 매일 가시가 잔뜩 달린 송곳을

(그 가시에 또 가시가 달리고 그 가시에 또 가시...) 암튼 잔뜩 가시 달린 송곳을 시뻘건 불에 데워 왼쪽 눈으로 쑤셔 넣고 머릿속을 휘휘 저어 곤죽을 만든 후 다시 왼쪽 눈으로 힘 있게 빼버고 난 후의 통증 같아요. 왼쪽 눈은 신경까지 달려 나와 있을 거고 거기로 곤죽 된 뇌가 줄줄 흐를 것이고 코랑 입이랑 귀로 뇌가 다 흘러내리겠죠? 그럼 조금 살 것 같겠네요.

°CRPS는 두통 처리하는 사이에 대충 처리될 것 같아요. 안되면 뒤통수 밑 반쯤 자르죠. 뭐. 신경 다발 싹둑.

°베체트는 두 가지 처리하면 아프다고 찍 소리나 할까요? 조용히 짜지겠죠? 아님 말고요.

°우울증은 우선 이 일 다 처리하고 이걸로 영화 찍어 대박 내서 돈 버는 거예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일찍 죽어야죠. 일단 헌금 좀 하고요♡.

°미처 처리 안된 나머지 병은 머리를 뽑 척수 줄기까지 쭉 잡아 뽑아서 깨끗한 계곡물에 살살 흔들어 씻어서 불순물 좀 털어내고 잠깐 쓰려고요.

°위랑 식도염은 꺼내서 손빨래 빡빡해서 햇볕에 빳빳하게 말려서 다시 넣어 잠깐 쓰구요.(일단 너무 잔인해서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헛소리가 너무 길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가끔 이렇게 라도 쓰며 내 병이 별게 아닌 것만 같아 한없이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나를 스스로 불쌍하게 대할 수도 있어진다.. 설령 혹시나 어떤 병이 차도를 보인다 해도  평소에 너무 지쳐있던 몸의 상태가 갑자기 모두 확 좋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갈길이 요원하다. 오늘 내가 떼쓰고 팠던  이유였다.

그리고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낸다.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다'

'나는 나을 것이다'

이렇게 희망차게 말할 순 없다. 난 그저 하루를 견디며 살아볼 것이다.

그것이 내 의지고 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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