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Aug 01. 2020

얼음 베개

두통이 단 하루만 이라도 없는 날이 있을 수 만 있다면...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워지기 시작하면 내겐 선풍기보다 먼저 준비해야 하는 여름 대비 용품이 있다.


일명 '얼음 베개'.

신선 식품을 배송할 때나 아이스 박스를 사용할 때 쓰는  아이스 팩을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타올로 감싸 베개 위에 올려놓고 잠을 청해 야만 그나마 수면제로 간신히 잠드는 2~3시간의 잠이라도 조금씩 잘 수 있다.


베체트 병에 걸리고  CRPS를 확진받은 후엔 여러 가지 합병증까지 늘어나 기존에 앓고 있던 혈관성 두통(편두통)이 더욱 심해졌고 덩달아 머리에 미열도 내릴 줄을 몰랐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마음 안에 화가 가득했던 나는 항상 머리가 질 듯이 아파 '얼음 베개'없이는 단 한숨도 잠들 수가 없다.

 

 2~3일간 아무리 단단히 얼려도 얼음 베개는 4시간 이상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 버리기 일쑤였고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던 나는 아픈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베개를 교체하곤 다.(CRPS때문에 차가 운 걸 만지면 돌발통이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장갑을 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베개를 교체할 때 잠깐이라도 실수를 하면 새벽에도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심한 돌발통을 겪어야  그 밤은 잠들지 못하는 밤이 었다.

 

얼음 베개는 내겐 애증의 물건다.


내가 처음 두통을 앓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금부터 20여 년 전쯤 매일 구토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유 모를 구토를 1년 반을 이어가며 좋다는 병의원을 다 찾아다녀 봤지만 뚜렷한 원인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베체트 교수님의 도움으로 소화기내과의 협진을 받을 수 있었고 그쪽에서 여러 가지 검사 후에도 원인이 나오지 않자 소화기 내과의 담당교 "구토의 원인이 위나 장의 문제가 아니라 뇌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습니다." 라며 뇌신경과로 전과를 해 주었다.


뇌신경과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내 오랜 구토의 비밀이 밝혀졌다.


내 병명은 '혈관성 두통(편두통)이었다.

그저 어쩌다 생기는 그냥 두통이 아닌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무식하고도 무지막지한 편두통이었다.

한 달에 4~5번만 생겨도 심한 경우에 속한다고 말하는데 이미 검사를 진행했을 당시에 달에 보름 이상을 심한 편두통으로 일상을 이어갈 수 없는 단계였다.

두통의 강도가 어찌나 심한지 구토는 다반사였고 머리가 너무 아파 웬만한 두통약으로는 통증이 가라앉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심할 땐 눈앞이 보이지 않고 정상적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생각도 보통의 삶도 살아갈 수 없도록 일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잠을 자는 순간에도 머리가 아프다는 것을 항상 느끼며 단 한순간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평상시에 짜증을 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지금은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와 섬유 근육통, 불면증, 자율신경 실조증 등으로 통증 지수가 올라가 일 년 365일, 하루 24시간, 한 시간조차도 두통이 없는 순간이  없.

내가  맑은 정신으로 두통 없이, 독한 약에 취하지 않고 무엇을 읽고 생각하고 말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희미하다. 또 내게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올 수는 있을까 슬프고 착잡하기 그지없다.


수시로 CRPS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얼음 베개'를 쓰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계절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아침, 저녁으로 덥고, 수시로 비가 쏟아지고 습한 이 여름이 어서 지나야 그나마 한 가지 고통이라도 조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두통이야 여전하겠지만 애증의 '얼음 베개'는 한동안 잊고 살 수 있을 테니까.


... 끔찍하고 몸서리 쳐지도록 사랑스러운 내 얼음 베개♡♡♡

이전 01화 [Prologue]다른 이가 알지 못한다 해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