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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r 22. 2022

"이제 끝이야. 더 이상은 안 참아. 못 참아."

"이 집에서 당장 나가"

명절(2021추석) 연휴 첫날에 방문한 응급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이 사단의 근본적인 이유인 코로나19 백신 덕분에 생긴 장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그래도 항상 미어터지는 응급실엔 들어갈 수 조차 없이 무조건 대기를 해야 했다. 들어가려면  코로나 증세와 겹치는 증세가 한 가지도 없어야 했고 한 가지라도 겹치는 증세가 있으면 무조건 격리병동의 침대가 비워지는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염이 의심되던 나는 심한 설사와 함께 고열이 동반되어 새벽 찬바람 속에 응급실 밖의 아스팔트 위에서 장장 6시간을 추위에 떨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화장실도 응급실 안쪽에 있는 걸 사용할 수 없어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방 50m 안에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아프고 난감했을지 상상이 되시죠? 아... 생각하니 또 가슴이 울컥 해지네요ㅠㅠ) 대기 중에 갑자기 설사의 징후가 보이면 남편에게


"여보, 나 화장실 가야 돼. 제발 빨리 움직여 줘. 유람하지 말고. 이러다 바지에 싸겠어. 휠체어 타고 있는 것도 끔찍한데 그 위에  똥 범벅을 하고 앉아 있으면... 으아... 여보, 뛰라고!"


라며 눈물 반, 고통 반에 절은 목소리로 닦달을 했었다. 


이럴 때 참 답답한 일이 생기고는 했다.


남편과 나 사이에 가장 안타까운 일을 몇 가지를 보자면 아무리  나와 아이에 관한 아무리 위급한 일도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겪는 일이 아니면  내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위급한지 눈으로 보면서도 체감하지 못한다. 이가 부러질지언정 바깥에선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내 노력으로  내가 가진 모든 병들의 통증을 참을 만하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내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어떤  증세로 내원했는지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었다.


남편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사람마다 어떤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크기는 다르다 여겼고 나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들이대는 잣대와 달리 남편에겐 3번도, 20번도, 100번도, 1,000번의 기회도 더 주며 기다려 줬었다.

하지만 남편은 좋은 얘기를 해도 일단 내가 얘기를 하면 귀를 막아 버렸다. 난 그저 매일, 매 순간 쇠귀에 경을 읽어대고 있었다.

그날 응급실 병동에서 사경을 헤매는 내 옆에서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나 요즘 가슴이 좀 답답해. 뭐가 막혀 있는 것처럼. 머리도 멍하니 기억도 잘 않나고. 나도 기억 상실인 것 같아.  힘드니까 이해 좀 해주라."


맹장에까지 옮겨 은 대장염의 수술 여부 결정을 기다리며 응급 병실에 누워 고통 속에서 덜덜 떨고 있불안장애 환자이자 해리성 기억상실을 가지고 있는 해리성 인격장애 환자인 내게 하는 남편의 소연이었.


그 말은 들은 내 슴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렇게 두 번의 대장염을 죽도록 심하게 앓고 이사 날이 다가왔다.

몸상태로 만 봐서는 도저히 이사할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이전에 8년 가까이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없었을 때였지만 이번엔 입원을 각오하고라도 집을 보는 것부터 다 내 주도하에 처리하게 됐다.


내가 아픈 동안 어쩌다 보니 여러 번 이사를 하게 됐었는데 알고 보니 집을 구하는 것도, 이사 당일 아저씨들과 함께 일을 했던 것도 다 딸 혼자서 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린 여자 아이 혼자서 큰 이사를 혼자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만만히 보이고 또 얼마나 고단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 몇 번씩이나 눈물이 터질 것을 눌러 참느라 애를 먹었다.

남편은 이사를 한다고 나가 바깥에서 어슬렁 거리다 짐이 다 들어간 새집에 와서 잔금 처리나 해주고 나머지 서류 정리 정도나 도와주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미리 알았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남편은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이 번 이사에  그게 여실히 드러났고 그동안 덮어져 있던 일들이 모두 까발려지게 됐다.

남편과 내가 결혼하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크게 싸웠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 편에)

그리고 난 최후통첩을 했다.


"당신이 알던 모르던 상관없어. 난 누구한테든 3번의 기회는 공평하게 줘. 그런데 또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3번이 넘으면 끝이야. 내 시간도 소중하고 나도 소중한 사람 이거든. 그나마 당신은 남편이고 ◇◇이 아빠라고 수도 없이 다시 기회 주고 다시 받아줬는데 그랬더니 당신은 그게 당연한 줄 아네. 당신이 그렇게 당연하게 살고 있는 삶이 내가 갈아 바친 아픈 내 몸이야. 남아 있는 당신 인생에 ◇◇이의 아픈 몸까지 갈아 넣을 생각은 개미 똥구멍만큼도 없어. 지금 이사해서 마침 돈 있으니까 집 해. 오피스텔 작은 걸로. 이 집은 친정아버지 돈이 많이 들어갔으니까 ◇◇이 꺼야. 인정하지? 일주일 줄게. 오늘은 늦었고 내일 호텔이든 모텔이든 찜질이든 나가줘. 얘기한 대로 안 하면 처음 있었던 일부터 친정에 고대로 얘기할 거야. 그러면 당신 한 푼도 못 챙기고 쫓겨날 거야. 알지? 일단 옷가지만 챙겨 나가고 큰 짐은 정리하지 말고 이대로 용달 불러."


마음이 약하고 긍휼히 넘쳐서 그렇지 한번 뒤돌아 서버리면 서릿발같이 매몰차기가 그지없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아는 남편은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 여보. 미안해. 미안해. 내가 다시 안 그럴게."


라고 급하게 장난이 가득 섞인 말투로 웃음 띈 얼굴로 얘기했다. 조금 전 까진 큰 소리를 내며 '바락 바락'싸우던 목소리는 어디로 보냈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뭘 잘못했는데?"

"그냥 다. 다 내가 잘 못 했어"


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그냥 다, 다 내가 잘 못 했어]


이 말은 사과도 뭣도 아닌 그냥 위기 모면 문장이다.


남편은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에 성질나게 분위기 파악도 못해 28년 동안 내 시간을 갉아먹고 나를 병들게 만든 바보 천치다.


이제 그 바보가 놀던 시간은 끝났다. 아픈 몸은 그대로 일지 몰라도 난 로소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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