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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r 28. 2022

이삿날의 진실

가장의 방임

대장염의 후유증은 지독하고 대단했다.


베체트를 시작으로 먹게 된 온갖 약의 부작용으로 내 인생에선 절대 경험하지  것 같았던  모이만큼 먹고 초고도 비만으로 살기경험하며 살 수밖에 없던 가여운 내 튼살 덩어리들을 대장염을 앓던 두 달 만에 8kg이나 덜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독한 약들로 부종과 건조함이 항상 심하거든요^^)

렇게 다 회복도 되지 않은 몸으로 휠체어도 타지 않은 채 지팡이와 딸의 팔에 의존해 흔들거리는 몸으로 괜찮다고 말하 집을 보러 다녔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과정도 내가 응급실을 다녀온 후에 아픈 상태로 다니고 있었고 다녀온 저녁엔 이렇다 저렇다 말을 전해도 남편은 '알았다'는 간단한 한 마디뿐 '고생을 했다'는 둥 '몸은 괜찮냐'는 둥 입에 발린 소리마저도 한 마디가 없었다.


돈 번다고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너도 힘든지 모르겠지만 나 돈 버느라 고생한다고 어깨에 힘이 아주 잔뜩 들어가 있는 거였다.  말이 많았다. 

하지만 우선은 이사가 문제였다.

그리고 눈에 거슬리는 가시를 뽑아 버리기로 결심했다.

결심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사하는 날 그 결심의 심지에 불이 댕겨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아무리 포장 이사를 한다 해도 사람의 성격마다 다 차이가 조금씩 있다는 건 살림해 보신 주부님들이라면 이해하실 것이다.

이사 전 날까지 귀중품이나 속옥, 또 따로 챙겨야 할 물건들을 챙기고  혹시나 반려동물과 함께 하시는 분이라면 호텔링을 맡긴다거나 하는 일로 늦은 밤까지 잠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게다가 난 이사 전에 오래도록 심하게 아팠던 이유로 전 날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도 이사 가는 집은 물론이고 살던 집의 마무리까지 깔끔히 처리하고 넘어 가느라 가까운 곳으로의 이사였지만 이미 이사할 집에 도착했을 땐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좋은 이삿짐센터를 만났어요. 인복이 많아요^^) 짐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사 팀장님이 말하셨다.


"여기에 다 계실 필요는 없어요. 저희가 먼지는 싹 빼고 고대로 다 옮겨 드리니까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위치 알려 주실 분 한분 정도만 남으시고 내려가서 쉬고 계시면 전화드릴게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이삿짐센터를 잘 만나 고생을 덜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ㅂㅂ씨가 잘 모를 테니 지니가 옆에서 도와주면 금방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에 남편을 쳐다보며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남편이 딸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건넸다.


"지니야. 네가 여기 남아 있고 나랑 엄마 차에 내려가 쉬고 있음 되겠다"


"...................??!!!"


순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정적이 흘렀다.


나와 남편은 50대이다.


나는 희귀 난치 질환 2가지를 포함한 20여 가지에 가까운 병을 앓고 투병하고 있는 중증 기저 질환자다.

내 딸 지니는 그런 나를 간병하다가 증상이 발현해 희귀 난치 질환을 발견하게 된 케이스로 자신도 불치병을 앓으며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엄마를 간병하는 (기특하지만 내겐 아프다 못해 창자가 끊어지도록 애가 끓는) 환이다.


그리고 이 이사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딸의 이사가 아니고 아픈 엄마를 간병하고 개인사업을 하는 아빠를 돕느라 차마 독립할 수 없어 부모와 함께 사는 딸이 있는 우리의 이사였다.


나는 태어나서 진심으로 생전 처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남편에게 면박을 주고 말았다.


"지니 아빠! 정신 차려. 지금 우리가 지니네 집 이사 도와주러 온 거야? 도와주러 왔으면 더더욱 그러면 안 되지만.

이거 우리 집 이사야. 당신이 가장인 우리 집 이사라고! 아픈 애 혼자 놔두고 나랑 차에 가서 앉아서 뭐 하게?! 짝짜꿍이라도 하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버럭 질러 놓고 흔들 거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지팡이에 의지한 채 현관문을 나섰다. 지니가 급하게 쫓아와 내 팔을 붙들며 말했다.


"엄마, 나 크게 기대 안 했었어. 너무 속상해하지 마. 이삿짐 빨리 들어갈 거 같으니까 속 끓이지 말고 기다려."


가슴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차 뒷좌석에 앉아 마음에 맺힌 피눈물을 지웠다.

그리고 들끓는 마음을 차갑게 진정시켰다. 남편과 2년간의 불타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 딸을 낳고 3년의 기간을 제한 26년간의 지독하고 슬픈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전열을 다듬었다.


남편 너. 후회하게 해 주겠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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