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Sep 21. 2022

발레 하듯 걷잖아. 어쩌라고!!

이성의 끈을 조용히 내려놓고 말했다

에 매달린 시계의 짧은바늘이 숫자 7을 넘어가고 거기에 긴 바늘마저 10을 넘어가는 순간이 오면 내가 누워 있는 안방 천 위로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 '쿠궁' 하는 소리가 천장과 벽을 타고 크게 울린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 우리가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들어온 윗집이 내고 있는 층간 소음이다. 

음 들려오는 그 소리를 필두로 잠시 후부턴 온통 집안을 뛰어다니는 아이의 발 망치 소리와 아이를 쫓아다니고 출근 준비를 하는 어른들의 배려 없는 발 망치 소리, 화장실을 타고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부모들의 고함소리... 흡사  학대를 의심할 만한 무시무시한 소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쿵쿵 쿠궁"

"쾅쾅 콰광"

"다다다닥 쿵쿵쿵"

"으아아아악!!!"

"으앙~~~~"

"이리 오라고 *%@&♤※..."

"꽈당" "꽈당" 

"쾅...."


온 집안을 울리는 층간 소음에 수면제 먹고도 하얗게 밤을 지새운 나는 뒷골을 타고 올라와 왼쪽 눈을 감기게 고 안면통을 일으키는 두통의 통증지수가 금세 8에서 10을 뛰어넘어 버린다. 그리고 두통에 질세라 어느새 다른 통증들도 기지개를 켜며 오늘도 험난한 하루가 될 것임을 예고하기 시작다.




우리의 삶의 공간이 아파트나 빌라, 연립, 혹은 오피스텔 같은 공동주택의 형태 많이 변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층간 소음의 문제를 피하고자 나 역시 피나는 노력을 해왔었다.


사실 남편과 나 둘이 살 때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른 두 사람이 서로 조심하자고 말을 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딸이 태어나고 난 후였다.

아이들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게 되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능숙하게 걸음을 옮긴다고 느껴지는 순간 날 듯이 뛰어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 이후부턴 아무리 많은 어른들의 눈이 아이를 쫒고 바라보아도 아이가 어른들의 시야를 벗어나는 일은 다반사로 순식간에 일어났다.

활달했던 딸아이도 바깥 활동 시에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여러 번의 고비를 겪은 후론 무조건 안전 위주의 외출을 선호하게 되었다.(끈이 달린 가방을 개 하고 뾱뾱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기기도 했었습니다^^)

밖에서 이럴진대 집 안에선 오죽했을까!

딸이 태어나자마자 온 집안에 두꺼운 매트를 깔아 놓았고 층간 소음용의 두 슬리퍼를 신긴 에도 남편과 아이에게 주문을 외우듯 '집 안에선  안 돼' '문 손으로 끝까지 잡고 살살 닫아야 해' '의자 끌지 말고 들어서 옮겨' '잘 시간인데 돌아다니면 안 되지''집에서는 항상 발레 하듯 걸어 다녀'.... 잔소리는 어느새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노랫가락처럼 입에 붙어 다행히 아이가 크는 동안 큰 문제없이 이웃과 잘 지낼 수 있다.

동네가 함께 기르고 있던 지니를 배려해 준 이웃분들의 고마운 정이라 생각했고 나 역시 이웃들을 생각하며 웬만한 층간소음은 감수하며 감사한 마음을 깊이 새기고 나누며 살았다.




하지만 나라고 뭐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렇게 평생을 조심하며 산다고 애썼던 아파트 생활 중에 겪었던 내 인생 최대의 역대급 층간소음 빌런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역대급 빌런과 층간소음으로 마찰을 빚으며 어릴 적엔 마간의 배려와 양보, 그리고 조심성만 있다면 이웃 간에 얼마든지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 여기았던 소음의 문제가 이제는 험한 말을 넘어서 사람이 상하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마음에 각박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었다. 


그 일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오기 바로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겪게 됐다. 그러니까 햇수로 3년 전에 시작해 꼬박 2년을 시달렸던 우리 집의 층간소음 빌런 연대기이다.


그 집으로 이사를 하던 때만 해도 내앓는 여러 병의 증세가 아주 많이 심했던 시기를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기절하는 일도 잦았고 팔과 다리에 생기는 crps로 인한 심한 돌발 통증으로 급실을 방문한다거나 구급대원이 출동하는 일도 여전히 많았었다. 그리고 불면증 또한 극심해져 잠이 오지 않는 날 부지기수였다. 불면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가 가진 모든 병들의 증상이 시와 때를 정하지 않고 발현되는 것들인 데다 저녁이 될수록 심해지는 병의 아픔들이 힘든 나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어 내 방의 이삿짐을 제대로 정리하는 데 만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불면증으로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져 엄청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억지로 잠을 청하려 애쓰지 않고 많이 아팠던 동안 못 읽고 미뤄뒀던 책도 읽어 보려 애쓰고 OTT 서비스를 통해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도 하며 그 집으로 이사 가기 3개월 전쯤에 시작한 브런치에 도전해 나름 투병 생활과 함께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을 때였다.(사실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불면증이 아닙니다. 불면증은 정신이 맑지도 않고 대부분 두통도 동반되어 잠을 이루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수면제 부작용으로 잠들었다 생각하지만 몸은 깨어 돌아다니며 위험하게 불도 쓰고 칼도 써서 음식을 만들거나 아주 심한 경우엔 외출을 하기도 합니다. 무섭죠. 저는 다행히 외출까지는 안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노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이 미비한 수준이었고 심해지는 코로나 전염병까지 더해져 외출을 삼가게 되며 점점 누워 지내는 날들이 늘어가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그곳에서의 생활이 편치 않을 거란 건 이사한 바로 다음날로 눈치챌 수 있었다.

눈치챘다기 보단 대 놓고 선전 포고를 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사하던 날 이삿짐이 조금 늦게 들어온 바람에 저녁 늦은 시간까지 정리가 이어지 었다.

게다가 이전 살던 집에서 짐을 벌려 놓고 지내다 갑자기 6평 정도 집을 줄여  당장 수납할 공간이 부족해 바깥으로 나와있는 짐도 많았기 때문에 짐 정리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내가 아픈 상태로 정리를 못한 채 그대로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쓸데없는 짐들이 너무 많아 버려야 할 짐 한가득 이었다.

안 그래도 너무 늦은 시간까지 치우는 것 미안한 마음이 들어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할 수 있게 남편과 아이에게 러 번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었다. 싫은 소리도 내가 하는 게 낫지 남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사하던 날 제자리를 찾지 못한 짐을 서두르고 서둘러 대충 쑤셔 넣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어느덧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잠자리에 누운 식구들은 다들 금세 곯아떨어졌고 며칠째 수면제를 먹고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던 나조차 '어떤 물건 어디에 넣을지 찾아서 제자리에 정리하는데만 1년은 걸리겠네.'라는 생각에 빠져 어느새 잠이  말다.

비록 약에 취한 잠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나마라도  만에 자는 꿀 같은 잠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은 이사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가 돼서야 일어났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온 남편이 쪽지 한 장을 가지고 들어왔다.

나갈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현관문에 붙어 있던 쪽지를 들어오는 길에 발견해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0 0 0호에 사는 사람입니다.
어제 이사를 오신 것 같은데 우선 환영합니다.
쪽지를 남긴 이유를 짧게 말씀드릴게요.
어제는 이사하신 날이라 별 얘기 없이 넘어갔습니다만, 늦은 시간까지 너무 시끄럽고 큰 소음들로 밤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제가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라 밤 10시  이후로는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소음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 나오기 전까지 쪽지를 보관해 놓았었고 이사 나오면서 쪽지의 내용을 옮겨 적어 놓았습니다)

기분 좋게 적힌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둘째 문제였고 이삿날의 정신없음에 미처 조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함을 느꼈을 아랫집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 사람이나 살고 있는지 알게 된 건 아니었지만 우리들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을 겪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남편에게 부탁해 가까운 과일가게에서 귤을 한 박스 사 오라고 부탁했고 나 역시 짧은 쪽지 글을 써 아랫집의 현관 앞에 함께 가져다 놓으라고 얘기를 했다.

그 쪽지에는 이미 층간소음 방지용 매트를 깔았으며 식구마다 3cm가 넘는 층간소음 방지용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덧붙여 놓았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환자가 있어 늦게 까지 잠을 못 자고 기절을 자주하여 119 구급대원 분들께서 자주 오신다는 얘기까지 전하며 양해를 부탁하였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원치 않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분쟁을 위해 만약의 경우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쪽지를 주고받은 후 2년간은 없던 불안감이 생길 만큼 미칠 것 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무엇을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내 발소리가 크게 들리지는 않을까, 오후 8시 이후에는 당연히 청소기는 돌릴 수 없었고, 밤 10시 이후에는 샤워만 해도 난리가 났다. 불면증이 심한 내가 한여름 더위에 지쳐 시원한 물로 바깥 거실 쪽 화장실에서 샤워를 해도(안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면 샤워 시간까지 체크해서 따지고 화를 냈습니다. 아파서 기력이 떨어진 후엔 샤워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든요ㅠ) 물이 흘러가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쪽지와 전화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에 화장실 가는 횟수와 시간까지 세어가며 난리를 쳐댔다. 우리 집으로 연락을 하는 것도 모자라 관리실과 경비실에 전화해 수시로 연락이 오도록 만들었다. 내가 내 집에서 살면서 기본적인 생활조차 못하게 만드는 사람을 처음 겪게 되면서 집안에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경기를 일으키고 불안감에 약을 먹어야만 진정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돼버렸다.

또 어느 날은 우리 집 화장실 물탱크 물 내려가는 소리가 30분이 이어진다며 들어보고 관리사무소에 하자 접수를 신청하라고 성화를 부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층간소음의 한 가지, 담배냄새.

아래층의 그 남자는 퇴근하기만 하면 담배를 피워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킬 수 있는 즐거움을 앗아가 버렸다. 역으로 우리 집에 층간소음의 피해를 보게 만들고 있었다.


어른들만 있어 발소리나 뛰는 소리로 층간 소음을 내지 않으니 불면증인 내가 늦은 시간에 화장실을 사용하고 씻는 것을 문제 삼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사실 그 문제는 아랫집의 침대 헤드를 다른 벽 쪽으로 돌리기했어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오래도록 아픈 나와 나를 돌보는 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심각한 불안증세가 생기도록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소름이 끼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배려가 넘치니 당연함을 넘어서 태어날 때부터 장착된 권리인 줄 아나보다. 한 번만 나를 더 건드리면 작신 밟아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 기회는 오래지 않아 내게 주어졌다.




2년 간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던 그 집을 떠나며 꼭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이 그 층간소음에 관한 일이었다. 내가 정리하고 떠나지 않는다면 또 분명히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마침 이사 갈 집도 정해지고 금요일이던 지난밤 단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해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일어나자마자 팔에 생긴 crps 돌발통으로 마약 진통제를 복용하며 하늘과 땅이 나를 가운데에 두고 그냥 붙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에 아랫집에서 걸어온 전화벨이 크게 울렸다. 생전 빠릿빠릿함이라곤 1도 없던 남편이 잽싸게 뛰어가 전화를 받으려고 했지만 통증과 약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내가 크게 소리쳤다.


"기다려. 그 전화 죽어도 내가 받을 거야. 옆에서 타이머 맞춰놓고 약이나 먹여줘. 시간 놓치지 말고. 알았지?"

"엄마! 여기 의자에 앉아. 내가 먹여 줄게. 정신 바짝 차려. 기절하면 안 돼."

"알았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저 아랫집인데요. 아니 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됩니까?... 제가 출근을 해서 10시면 자려고 누워야 되고요. 7시면 일어나야 되는 사람이에요. 새벽에 3~4시에 그렇게 돌아다니시고 화장실을 몇 번씩 가시고... 잠을 어떻게 자라고 그러는 겁니까? 잠을 자야 출근을 하고 일을 할거 아닙니까? 아니 정상적인 사람이면 대부분 10시, 11시쯤 자서 6시, 7시쯤 일어나서 일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 댁처럼 그렇게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거 보세요. 김 ㅇㅇ씨! 정상적인 사람이요? 대부분의 사람이 다 6시에 일어나고 10시에 잔다고요? 아니 그럼 사회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세상에 회사원만 있어요? 아파트엔 회사원만 사나요? 2교대 하시고 3교대 하시고 밤새워 일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김 ㅇㅇ씨 당신이 6시에 일어나고 10시에 잘 수 있는 거야.(이때쯤 뚜껑 날아가 버렸어요. 못 찾았습니다 ㅎㅎ) 보아하니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빠닥빠닥 기어오르면서.... 내가 평소에 층간 소음을 냈었나? 시끄럽게 뛰어다니길 했었나? 매트 깔고 슬리퍼 신었잖아. 부러진 발목으로 발레 하듯 걸었잖아. 당신은 매너 없게 담배 빡빡 피워 대면서 다른 사람은 다 당신 뜻대로 해야 되는 거야? 몸이 불편한 환자가 있다고 양해 부탁한다고 말했잖아. 어쩌라고. 때려 패서 재워? 못 자는 환자를? 불면증 환자더러 밤새 화장실을 쓰지 말라는 게 정상이야? 그게 고문이지. 여기가 연립이나 빌라도 아니고 화장실 벽에서 침대 헤드 떼 보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다른 벽으로 침대를 돌리던가. 당신은 노력 하나도 안 하면서 어쩌라고 맨날 지랄이야!!!! 네가 보낸 쪽지, 전화 한 날짜, 시간, 내용 다 보관하고 적어 놨어. 지난주부터 층간소음으로 껄떡거리면 스토킹으로 신고하면 되는 거 알지? 당신 때문에 없던 정신병도 생길 지경이야. 스토킹으로 경찰 조사받으러 다니는 거 회사에서 알면 엄청 좋아하겠다. 너 몸조심해라. 알았냐!!!"

"아... 어... 음... 탈칵!"


말인지 신음소 린지 모를 소리를 내던 아랫집 남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그 남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던 건 아파트 단지의 주민대표를 뽑는 서명지를 엘리베이터에 붙여 놓은 것을 통해서였다.

그 남자가 예민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최대한 협조적으로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본인의 예민함 만을 내세우며 다른 이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문제가 생겼을 때 외부에서 원인을 찾기 전에, 아니면  외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case였다.

그리고 우리가 이사를 나온 후 그 집엔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이 있는 가족들이 이사를 왔다. 인과응보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두통이 심해지고 마약 진통제를 먹으며 또, 기억 상실을 겪는 중에 잃었다 여겼던 부당함을 느꼈을 때 내 주특기였던 속사포처럼 말하며 상대의 기 죽이기가 다시 살아난 것 같아 행복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단순한 우기기가 아님을 알아주시리라 믿는다.

내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고 진득하게 노력하고 기다려보려 한다.

반드시 다시 일어나 건강해질 날이 올 것을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