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Oct 01. 2023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위한 마음

"나는 괜찮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52년을 살아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다른 어떤 말도 아닌 '나는 괜찮아'였다.


부모님을 걱정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할 때, 혹여 실수를  순간 무너진 자존감을 들키지 않으려 했을 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힘들어했을 때, 그런 나를 두고 남편이 외도를 했을 때, 제대로 된 남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덮고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을 때조차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만 참으면, 나만 괜찮다고 생각하고 일을 키우지 않으면 아주 잘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냥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괜찮아'라는 문장은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해 어디에서든 인정받을 수 있었고 내겐 부족함 없는 돈과 그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인연들이 남게 되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실수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 열이면 열 가지를 다 잘 해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살았다. 그러기 위해선 언제나 나는 괜찮아야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를 악물고 잘 해내려 애를 썼는지 이제와 돌이켜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짙을 뿐이다.

진심으로 나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는지... 내가 내 마음을 먼저 챙기고 들여다본 적이 있었는지.

심지어 처음 희귀 난치 질환인 베체트를 진단받고 투병을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아프다고 누워 있는 게 맞는 건가? 혹시 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느끼는 통증이 실제 하는 것인가? 그런 많은 생각을 하며 마음을 들볶기도 했었다.

 

진심으로 단 한순간도 상처받고 지쳐있을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일에 내 마음만을 생각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부족함으로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받고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며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컸던 탓이리라.


난 전력을 다해서 나를 제외한, 내가 속한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중요한 것들이 차고 넘쳤지만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을 얻고 난 후에 내게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로 인해 받은 상처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나를 망가뜨려 버렸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나를 버린 사람은 남편과 친정식구들이었다.

그리고 난 더 이상 괜찮을 수 없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고 죽으려 해 봤지만 그것 역시 사고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힘들면 너만 생각해. 네 마음이 어떤지만 생각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사람이 네 인생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닌데. 네 맘이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으면 울고. 그리고 네가 해야 할 일이 열 가지 라면 그중에 한두 가지만 잘 해내도 그건 성공한 인생이야. 누가 뭐라 할 거야. 남의 눈 신경 쓸 거 없어. 원래 사람들 남의 일에 크게 관심 없어. 열 가지 모두 다 잘 해내려니까 병도 생기고 마음도 힘든 거야. 넌 이미 너무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 네가 할 일은 아프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 마음 편히 먹는 거야. 그것만 잘해도 지금은 100점이야. 그리고 ㅇㅇ아,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린 사람 이잖아. 어떻게 항상 괜찮겠어. 괜찮지 않을 때 서로 기대고 위로하고 살면 되지. 언니가 언제든 옆에 있을게. 얼른 조금이라도 나아서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해야지."


내가 결혼하기 전 같은 직장을 다니며 만나 어떤 친구보다 깊은 우정을 나누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서로를 지키며 살아온 언니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이나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내가 내 마음을 먼저 돌아보고 다독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운명이 던져준 삶의 기로에서 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으로 한 없이 곤두박질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딸과 함께 겪으며 딸에게 말이나 책으로는 알려주기 힘든 삶의 지식을 부모인 내가 함께 하는 가운데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도 내겐 큰 위로가 되고 있다.


그리고 30년을 함께한 보물 같은 우리 언니 양여사와 자식을 함께 나누며(언니 큰 딸은 제 첫 조카로 손주를 낳아 2년간 매주 찾아와 큰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백일 지나고 1년 동안은 매일 왔고요^^♡. 그리고 저의 딸은 언니의 폰에 막내딸로 저장되어 있고 저랑 연락하는 것보다 저의 딸과 연락하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언니가 예뻐합니다) 또 다른 행복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나는 한참 동안은 괜찮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괜찮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직도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나를 놓지 않고 있고 남편과의 관계와 친정 엄마와의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내야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젠 견딜 수 있는 한 가지 힘이 내게 더 생겼음을 믿고 천천히 기다리려고 한다.


나는 이제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상흔으로 변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