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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l 11. 2023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상흔으로 변하지 않는다

언제 보아도 피 눈물 흘리며 상처받던 처음 모습 그대로

베체트라는 희귀 난치 환을 앓고 있는 중에 그보다 더한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진단받고 나서 여러 가지 합병증과 정신적인 문제들로 내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간 일을 잊지 못하고 자꾸 되새김질하며 나 스스로 병이 낫는데 걸림돌이 되는 일을 반복하는 것 또한 역시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건 가족에게 받은 상처 시간이 흘러도 상흔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니면 상흔으로 변할 만큼의 시간을 미처 흘려보내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9년이면 짧은 세월도 아니건만....

처음엔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어떻게든 내 상황과 결백?을 알리고픈 마음에 가족들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됐다. 내가 아무리 집착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중병에 걸려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여태껏 함께 정과 사랑을 나누며 살았던 나에 대한 조금의 측은지심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한 부모 밑에 태어나 내가 주었던 노력과 헌신에 대한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나를 밀어내는 참혹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언제나 나와 같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결국 내 발목을 붙잡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또 한 번 미련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모든 가족들이 내게 그러는 데는 '정말 내게 치명적인 잘못이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안타까운 생각.

그러면서 한동안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월들을 복기하며 나 자신을 괴롭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내가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될 만한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단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할까'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온 나였다. 나를 낮추고 내 즐거움과 나의 필요를 누른 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하다고 여기며 산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제대로 깨달은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살던 곳에서 이사를 나오던 날 잔금이 부족했는데도 말하지 않았던 이유를 남편은 3년이 지난 후에야 내게 털어놓았다.

이사 나오기 서너 달 전부터 내가 몸이 많이 아파 정신이 없으니 당신이 확실히 챙기고 금액을 알려 달라고 말하던 내게 자신이 확실히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네 몸만 챙기라고 큰소리쳤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그저 말로만 알겠다고 대답했던 남편이었다. 막상 이삿날 짐을 빼고는 친정에 누워 있는 내게 딸이 전화로 6천만 원이 부족하다고 알려 왔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사하기 일주일 전까지 입원해 있을 정도로 통증과 고통에 짓눌려 제정신을 리고 있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남편은 그렇게 묵직한 한방을 날렸고 부족한 돈을 메워주신 친정 부모님은 내가 남편과 짜고 돈을 뜯어내려 했다고 생각하셨다 했다.

정작 잘못을 저지른 남편은 입을 다물어 버렸고 나는 한순간에 사기꾼, 도둑년이 되어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리려 해도 부모님은 연락조차 받지 않으셨다.

그 당시에 남편을 아무리 다그쳐도 남편은 입을 꾹 닫고 있기만 했었다. 남편이 3년 만에 꺼내놓은 대답은 기가 막히기만 했다.

 

"돈이 모자란 다고 하면 네가 해결할 줄 알았어. 그때 이사 할 때 보태라고 아버님이 주신 돈 있었잖아. 그걸로 될 줄 알았지."

"하....! 그래 있었지. 그건 말 그대로 집 구하는데 보탰지. 그 돈이랑 잔금 모자란 게 무슨 상관인데? 내가 알고 있는 거랑 금액이 맞지 않으면 미리 얘기했어야지. 내가 서너 달 전부터 수십 번을 물었는데 당신 확실하다고 했잖아. 하... 그럼 결국엔 당신 때문에 난 가족을 잃은 거네?"


그나마 실낱같이 유지되던 남편에 대한 신뢰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남편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용서를 빌고 노력을 했더라면,

처음부터 내게 진실을 말해 나라도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줬더라면,

26년을 기르시고 40년이 훌쩍 넘도록 나를 봐오신 부모님께서 나를 조금만 더 믿어 주셨더라면,

오빠보다 먼저 취직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외면한 적 없이 돈이든 마음이든 무엇이 됐든 필요하다 말하는 걸 거절해 본 적 없는 동생의 투병을 한 번만 이라도 위로해 줬더라면,

하나뿐인 여동생 처음 3년 부부 싸움 할 때마다 밤낮으로 불러대는 걸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위로했고 11개월 조카 맡아 9년을 길러주고 나보다 공부 잘했다 나부대도 너그런 맘으로 사랑했건만 그들은 모두 너무 쉽고 차갑게 나를 버렸다.


아버지는 기억 못 하신다 하지만 내겐 너무 생생했던 모진 말에 목숨을 한번 끊었고 엄마가 홧김에 한 얘기라 당신은 잊어버렸다는  말 때문에 난 다시 한번 기로에 서있다. 


"너 때문에 지니픈 거야. 네가 그렇게 만든 거야"  


엄마가 내게 상처를 주려고, 홧김에 일부러 그런 말을 하셨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딸이 아픈 건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난 모른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잊고 내려놓는 것이 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여기 이렇게 있다. 다만 내가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젠 더 이상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살고 싶은 마음에서 이다.

장마로 흐린 날씨에 온몸이 부서져 내릴 듯 아프고 매 순간이 고통이지만 가족으로 인해 생긴 상처만 할까.

가족이 내게 준 깊은 상처가 어서 빨리 상흔으로 변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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