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일어난 불행은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부모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시는 일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어찌 보면 당연? 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연의 섭리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어느 자식이 부모님의 죽음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일 수 있었겠을까. 게다가 작가님 어머니의 죽음은 더욱 당연하게 받아 드릴 수 없는 기가 막히고 서글픈 죽음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두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시고 그중의 딸인 작가님은 결혼 후 부모님의 도움을 조금 받아 악착같이 아끼고 알뜰히 모아 부모님과 한 아파트, 한 동에 세 층 밑에 집을 장만해 입주를 몇 달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렇게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던 중 2021년 3월 27일 살고 계시던 27층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사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글을2021년 4월 7일에 처음 업로드 하기 시작하여 어머님의 사인이 추락사인지 자살인지를 밝혀가는 과정과 그렇게 되실 수밖에 없으셨던 상황과 이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적어 나가고 있었다.
어머니를 제대로 보내드리는 건 고사하고 여러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을 염려해사인을 변경한 채 슬픈 장례식을 보내고 작가님은 여러 가지 생각과 슬픔에 매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과 달리 그녀는 몇 달이 지나도록 어머니의 죽음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워했고 아버지나 남동생, 남편도 함께 슬퍼하긴 했지만 모두들 그녀에게 빠른 시간 안에 슬픔을 벗어 버리길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래 생각하고 있어 봐야 돌아가신 어머니도 슬퍼하는 그녀도 좋을 게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죽음을 받아 드리는 태도는 다른 것이고어떤 죽음이든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거쳐야만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가로막는 가족들로 인해 숨어서 울어야 하는 작가님을 돕고 싶은 마음에 옆에 있어주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오랜 생각 끝에 작가님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 역시 앓고 있던 여러 가지 병들이 좋아진 상태도 아니었고 딸이 챙겨주지 않으면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고 혼자서 외출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쇠약한 몸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잠깐씩 글을 쓰는 중에도, 작가님이 올린 글을 읽으며 더 이상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게 그래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이 내게 계속 말하고 있었다.
처음 한 번의 연락으로 작가님은 바로 메일로 답장을 보내 주었다. 자신의 글을 계속 읽어주어서 감사하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그렇게 시작된 메일을 내 이야기를 먼저 조금씩 건네며 매일 이어가기 시작했고 처음부터 번호를 알려주기 부담스러워하던 작가님은 내게 카톡 아이디를 알려주고 나는 작가님께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매일 카톡을 하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와 난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님은 나를 '언니'로 부르고 싶어 했다. 작가님에겐 제대로 된 이모나 고모가 없었다. 그녀의 어머닌 상처가 많은 분 이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난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얘기들을 들어주고 비록 정답은 아닐지라도 궁금해하는 얘기들에 대한 답을 들려주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상처받은 작가님의 마음은 몸에 건강 이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여 옆에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내 마음이 더 안타깝기만 했다.
가까이 살기만 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 주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작가님과 저의 집은 서로 경기도의 반대 편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작가님 집 가까운 죽 집에서 죽도 여러 번 배달하고 먹는 것에 대한 흥미를 잃은 작가님을 위해 음식을 직접 만들어(불 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없어서 이건 딸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지하철 택배를 이용해 배달해 먹이기도 했다.
제철 이어서 맛있는 음식, 내가 먹어봐서 맛있는 음식 등을 챙기고 정말 예쁘게 생긴 얼굴이지만 공부만 하느라 세세히 챙기지 않은 좋은 화장품도 그녀의 생일에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들을 여러 번 내게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2년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인에 대해, 또 어머니가 겪었던, 자신이 자라면서 보고 겪었던 이야기들을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얘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많은 것들을 속으로 감당하며 참아내고 있었고 그 2년간의 시간 동안 철저하게 모르는 남이었던 나에게는 속 시원히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 역시 평생 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랑과 마음을 나누며 살았던 가족들에게 배신당했던 쓰라린 고통에 내가 바보같이 살았던 게 아닌가 후회가 가득했던 시간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님은 내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고 어느 날 드디어 내게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많은 것을 질문했다.
그중에 가장 궁금해했던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언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날 잘 알지도 못했잖아요."
"글쎄... 그냥 그래야 될 거 같았어. 그리고 널 붙잡으면 나도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말 그렇더라고. 그리고 내가 원래 이렇게 생긴 사람이기도 하고.또 내가 힘든 시간을 겪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를 도와줬고 내게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어. 내가 널 도왔다는 생각이 들면 너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한테 돌려줘.나한테 빚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래도요... 언니 같은 사람 처음 봤어요.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을 때 나중에 은혜를 갚아야 된다고 생각해도 실제로 그걸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내 곁에 있어 줄 거죠? 내가 아기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알려 줄수도 있죠? 내 주변엔 그런 거 알려줄 사람 없어요... 알죠!"
"걱정하지 마. 네가 귀찮으니까 이제 그만 연락하라고 하지 않는 이상 항상 네 옆에 있을 거니까."
"고마워요, 언니. 정말 고마워요."
그녀를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던 그 2년간의 시간은 사실 힘들고 지쳐있던 나를 바로 잡는 시간이었다고 해야 맞는 말 일 것이다.
나 역시 남편과의 깊은 갈등과 변하지 않는 건강상태로 삶을 버리고 싶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를 붙잡는다는 명목하에 쓰러지려는 나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고 정말 다행히도 힘들어하는 그녀 역시 다시 한번 용기 내 세상을 살며 엄마의 삶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려 마음먹게 됐다.
그녀는 오랜만에 남편과 긴 휴식과도 같은 여행을 다녀온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계획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어머니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망가뜨리고 자신의 삶을 내버리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녀의 앞날이 항상 밝고 행복하지만은 않더라도 운명이 주는 고난을 이겨내고 삶을 향해 나아가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도 이겨낼 힘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그녀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한다.
언제나 그녀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면서!!
두 달전 제가 올린 글에 그녀가 달아 준 댓글 입니다.씩씩하게 살고 있는 그녀를 응원합니다.